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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보다 100년 더 빨랐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중력’ 연구
<KISTI의 과학향기> 제3851호 2023년 04월 24일그림 1.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과학과 미술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찾으려 했다. (출처: Shutterstock)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사상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예술, 발명, 건축, 해부학, 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천재성은 여러 작품과 기록으로 전해지며, 그가 남긴 친필 노트인 ‘코덱스’는 수많은 스케치와 특유의 ‘거울형 글쓰기’ 덕분에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코덱스에서 다빈치가 중력을 연구했을 뿐 아니라 이 개념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추론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과학 저널 <레오나르도> 2월호에 실린 이 발견은 17세기 뉴턴이 만유인력 법칙을 정립하는 데 토대가 되었던 1604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사고실험보다도 100년 더 앞선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움직임의 등가’로 얻어낸 신비한 삼각형
그림 2. 다빈치의 노트 코덱스에 기록된 직각이등변삼각형. (출처: Caltech)
다빈치의 중력 연구 사실을 밝혀낸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의 모르테자 가리브 교수는 다빈치가 1478년에서 1518년 사이 남긴 ‘코덱스 아룬델’ 143쪽에 그려져 있는 삼각형에 주목하였다. 연구진이 ‘신비한 삼각형(mysterious triangle)’이라고 부르는 이 직각이등변삼각형의 빗변에는 ‘Equatione di Moti‘, 즉 ‘움직임의 등가’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과연 무슨 뜻일까?연구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해당 페이지에 거울형으로 적힌 메모를 번역하고 그림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스케치를 특정 실험을 묘사한 것으로 해독하였다. 하늘에서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우박을 내리는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는 코덱스 기록에 비추어 볼 때, 다빈치가 낙하 운동을 직접 구현할 수 있는 실험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이제 다빈치의 스케치를 보며 한번 떠올려 보자. 한쪽 끝에 대문자 A라고 표시된 지점에 있던 항아리가 지면과 평행한 직선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물방울이나 모래알 같은 작은 알갱이를 떨어뜨린다. 일련의 입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관찰될지 상상이 되는가?
연구진은 연속해서 떨어지는 알갱이들이 비스듬한 선을 이루어 항아리의 이동 경로를 포함한 전체 도식이 ‘삼각형’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직 낙하하는 알갱이들이 삼각형의 빗변을 그리도록 만들려면 수평 이동하는 항아리는 등속이 아닌 가속 운동을 해야만 한다. 수직 방향에서 중력이 작용해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평 방향에서도 가속이 되어야 직각이등변삼각형이 나오게 된다. ‘움직임의 등가’란 바로 직교하는 두 방향의 움직임이 모두 힘이 가해진 가속 운동임을 의미하며, 이것은 다빈치가 입자가 수직으로 떨어질 때 점점 더 빨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시대를 앞선 다빈치의 중력상수
그림 3. 연구진은 다빈치의 실험을 볼베어링을 이용해 재현하기도 했다. (출처: Caltech)
그림 4. ‘움직임의 등가’로 만들어낸 직각이등변삼각형 형태의 도식. (출처: Leonardo)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연구진이 논문과 함께 발표한 볼베어링 영상(그림 3)을 보면서 다시 확인해 보자. 먼저 이 영상의 시작부터 약 4초 동안 항아리는 일정하게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등속 운동을 한다. 즉 좌에서 우로 이동하면서 알갱이를 떨어뜨린다.
이때 항아리 속 알갱이는 항아리의 진행 방향인 횡축으로 속도를 지니고 있으므로 항아리에서 나온 이후에도 (관찰자 시각에서) 우측으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그리고 매 순간 항아리에서 떨어지는 모든 알갱이들의 위치를 각각 점으로 찍어 이으면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종축과 나란한 수직선이 그려진다. 다시 말해 항아리가 등속 운동을 하면 삼각형이 아닌 수직선이 나타난다.
다음으로 연구진은 영상의 4초쯤부터 항아리가 등속이 아닌 가속운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시뮬레이션에서 항아리는 일정하게 속도가 붙어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 알갱이들을 떨어뜨린다. 앞서 등속 운동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갱이의 위치를 점으로 찍어 이으면, 이번에는 수직선이 아닌 비스듬한 대각선이 나타난다. 종축 방향으로 중력, 횡축 방향으로 실험자가 설정한 가속의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즉 ‘움직임의 등가’로 직각이등변삼각형 형태의 도식이 만들어지므로, 다빈치가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빈치는 독창적인 기하학적 접근을 통해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가 꾸준히 증가하게 만드는 힘, 즉 중력을 알아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비록 다빈치의 계산에 오류가 있긴 했지만, 연구진이 그의 실험을 재현한 결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상수(G)를 97%의 정확도로 계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얼마나 시대를 앞선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빈치가 중력을 탐구하고 씨름했던 고민의 흔적들을 보면 문득 현대 시대에 태어나 얼마나 많은 지식을 손쉽게 배웠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어 감사한 세상이지만, 가끔은 다빈치처럼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당연해 보이는 현상을 한 번 더 파고들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식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학자 다빈치처럼 말이다.
참고로 얼마 전 미국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인 두 고등학생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했다고 주장해 화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300가지가 넘는 피타고라스 정리 증명법이 알려진 가운데 이 학생들은 단지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있는 삼각법과 무한등비급수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찾았다고 한다. 어쩌면 다음 위대한 발견은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글: 정유희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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