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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톤이 만드는 핑크빛 호수의 비밀
<KISTI의 과학향기> 제2650호 2016년 05월 16일딸기우유야, 호수야? 호주의 힐리어 호수를 보면 두 눈을 의심하게 된다. 호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딸기우유처럼 예쁜 꽃분홍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핑크호수가 여기 한 곳이 아니라는 거다. 아프리카 세네갈의 레트바 호수와 캐나다의 더스티 로즈 호수 칠레의 레드 라군 등 세계 곳곳에서 핑크호수를 볼 수 있다.
■ 핑크호수의 비밀은 분홍색을 띠는 녹조류
사진 1. 호주 힐리어 호수(출처: wikipedia/Aussie Oc)
이 핑크호수들은 여행자는 물론 과학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최근 과학자들이 핑크호수의 비밀을 푸는 데 성공했다. 그 비밀은 호수 속에 살고 있는 아주 작은 생명체, 플랑크톤이었다.
‘익스트림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은 그동안 핑크호수의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를 해왔다. 힐리어 호수와 여러 핑크호수의 물을 수집하고 물에 들어 있는 침전물과 미생물들을 걸러내 분석한 것이다. 특히 호수가 핑크빛을 내게 된 원인으로 추측돼 온 ‘두날리엘라 살리나’라는 식물 플랑크톤에 주목했고, ‘유전자 메타 분석’을 통해 미생물들의 종을 식별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호수 안에서 두날리엘라 살리나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또 세네갈의 레트바 호수와 다른 핑크호수에서도 이 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호수가 핑크빛을 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두날리엘라 살리나 때문이라는 결론을 낸 것이다.
두날리엘라 살리나로 불리는 식물 플랑크톤은 녹조류의 일종이다. 녹조류는 진핵생물 중 동물과 식물, 균류가 아니면서 색소를 갖고 독립적으로 영양생활을 하는 미생물을 말한다. 흔히 녹조류라고 하면 녹색을 띤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종은 좀 특이하다.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몸속에 베타카로틴이라는 붉은 색소를 활성화시킨다.
생물체는 자외선을 받으면 몸속에서 활성산소가 만들어진다. 활성산소는 몸속에서 산화작용을 일으켜 세포막과 DNA, 그 외에 모든 세포 구조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유해산소’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베타카로틴이 활성산소의 산화작용을 약하게 만들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주로 먹는 영양제에 카로틴 성분이 사용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두날리엘라 살리나의 분홍빛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 녹조라떼, 핑크호수와 같은 이유?
그렇다면 핑크호수에는 식물 플랑크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바로 매우 짠 극한의 상황에 적응한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두날리엘라 살리나가 사는 핑크호수들의 특징은 사해처럼 염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들어가면 둥둥 떠 있을 수 있다. 레트바 호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소금을 캐는데, 삼투압에 의해 수분을 뺏기는 삼투압 현상을 막기 위해 온 몸에 기름칠을 해야 할 정도다.
사진 2. 두날리엘라 살리나 때문에 바다 소금이 붉은 색을 띤다.(출처: wikipedia)
실제로 두날리엘라 살리나도 비슷한 전략을 갖고 있다. 몸 안에서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글리세롤을 만든다. 세포 안의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때문에 염도가 높은 물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전략이 없었다면 세포 안의 물이 모두 염도가 높은 밖으로 나와 세포가 쪼그라들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 동물 플랑크톤을 비롯한 포식자들은 두날리엘라 살리나와 달리 전략이 없다. 결국 염도가 높은 호수에 적응하지 못하고 개체 수는 줄어든다. 포식자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두날리엘라 살리나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녹조라떼’ 라고 부르는 녹수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녹수현상은 초록빛을 띠는 ‘마이크로 시스티스’라는 남조류가 늘어나면서 발생한다. 하천이나 강에 인이나 질소와 같은 영양물질(營養物質)의 양이 늘어나면 이를 먹고 사는 남조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광합성에 필요한 용존 산소가 줄어드는 속도는 빨라지고, 포식자들은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개체수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식물 플랑크톤 수가 더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렇듯 물은 어떤 플랑크톤이 어떤 색소를 활성화하느냐에 따라 녹색이나 붉은색으로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놀라게 되는 자연의 멋진 경관이나 특정 현상은 사실 미생물들이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본능의 결과였던 것이다.
글 :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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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감사합니다.
2016-05-18
답글 0
....치열한 생존본능의 결과,,,,잘 보고 갑니다
2016-05-16
답글 0
녹수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남조류라고 하였는데 이는 이전에 사용하던 잘못된 용어이다. 이 생물체에 대해서 잘 모를 때 물에서 광합성을 일으킨다고 조류 종류로 구분하였는데 실제로는 광합성 세균으로 cyanobacteria인데 우리 말로는 남세균 또는 시안세균이라고 부른다. 조류와 세균은 동물과 식물 사이보다 훨씬 더 관계가 먼 것이므로 조류라고 부르면 잘못된 것이다.
2016-05-16
답글 0
과학의 향기를 읽을때 마다 세로운 지식을 알게되 참으로 고맙습니다 저는 이 같이 좋은 내용은 많은 사람한테 알리면 얼마나 졸겠습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2016-05-16
답글 0
잘보았습니다---! 항상새로운내용고맙습니다!
2016-05-16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