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과학향기 Story]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원숭이가 있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017호   2024년 10월 28일
이름은 사람과 사물, 개념 등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붙여진 기호이자, 각각의 정체성을 부여하며 객체와 구별 짓는 상징 체계다. 또한,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추상적, 무가치적 존재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고, 자신의 영역에 포섭하는 고도의 사회적·인지적 행위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김춘수의 시 <꽃>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도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나, 자신의 애착물과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는 행위가 이런 의미의 발현인 셈이다.
 
언어를 통해 감정, 생각, 정보를 전달하고 특히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의사소통 능력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종의 특수한 ‘음성’을 통해 이름을 부르는 동물들이 관찰되고 있다. 단순히 개체 간의 관계를 강화하고 위험에 대한 경고 및 식별을 위한 음성신호, 그 이상의 ‘언어적 소통’을 하는 똑똑한 동물들이 존재하는 셈이다.
 
최근 데이비드 오머 이스라엘 히브리대 사프라 뇌과학센터(ELSC) 연구팀은 그 목록에 마모셋원숭이도 포함될 것이라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소리로 소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비인간 영장류인 마모셋원숭이는 어떻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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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그간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의사소통 능력으로 여겨졌지만, 동물들도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Shutterstock
 
소리로 의사소통하는 이유…안전 때문
 
동물들은 각자의 기호체계뿐만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처럼 다양한 감각기관을 활용해 의사소통한다. 이 중에서도 청각 신호는 동물들에게 안정적인 신호 체계로써 활용된다. 소리는 멀리까지 빠르게 전달되고, 신호 생산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며 생산된 신호가 빠르게 사라져 종의 안전을 덜 위협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로 꼽히는 돌고래는 숨구멍 아래 파닉 립스(Phonic Lips)를 진동시켜 딸깍하는 소리나 휘파람 소리를 내어 상대를 호출한다. 앵무새는 수신자의 울음소리를 모방하여 동종의 이름을 지정하고 의사소통하며, 남극 펭귄도 미묘한 음성의 차이를 인식해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동물의 소리 신호에 ‘이름’이 포함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재는 돌고래, 코끼리 등 극히 적은 수의 동물만이 각자 이름에 해당하는 고유한 소리를 만들어 서로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코끼리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는 반응하지만, 다른 소리에는 대체로 무관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거나 자신과 관계없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쿨하게’ 반응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이 관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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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코끼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를 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아닌 것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Shutterstock
 
 
‘양희’, ‘철수’는 아니지만 이름이 있는 마모셋원숭이
 
최근에는 마모셋원숭이 역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동물 중 하나로 밝혀졌다. 마모셋원숭이들은 ‘피콜(phee-calls)’을 통해 서로를 식별하고 소통한다. 피콜은 주파주가 점진적으로 바뀌는 펄스 형태의 소리를 비교적 긴 시간 지속해서 내는 발성이다. 돌고래나 코끼리 등 다른 개체와 소통하는 동물들의 소리에서도 발견되는데, 원숭이들이 내는 소리를 떠올렸을 때 짧은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마치 리듬처럼 들리는 소리를 생각하면 쉽다.
 
ELSC 박사와 연구팀이 마모셋원숭이의 피콜이 녹음된 파일을 분석하여 다시 들려준 결과, 이들은 자신을 지칭하는 특정 음에서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콜은 주로 가족 구성원 안에서 비슷한 발성 표지를 사용하고 있어 구성원 내 학습되고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마모셋원숭이 성체는 혈연관계가 없는 대상들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연구진은 마치 사람의 가족 내에서만 사용하는 특수 어휘나 사투리 억양의 학습·강화 형태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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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마모셋원숭이는 서식 환경 때문에 독특한 발성 표지가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shutterstock
 
한편 연구진은 이러한 마모셋원숭이의 발성 표지가 서식지 환경에 의해 진화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마모셋원숭이는 주로 남미 열대우림 지역에 서식하는데, 지역 특성상 시각, 후각, 촉각 등의 감각기관을 통한 의사소통보다는 특정 발성이 훨씬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지됐을 것이라는 의미다. 오머 교수는 이 연구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언어 진화 메커니즘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여 ‘이름 짓기’, 즉 특정 개체에 대한 특수성을 부여하는 뇌 메커니즘 발달에 주요한 시사점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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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정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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