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확장된 윤리, 이제는 동물권을 고민해야할 때

<KISTI의 과학향기> 제3109호   2018년 03월 14일
2018년 1월, 배출가스 배출량을 조작하는 사기극을 벌였던 독일의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이 원숭이들을 가두어놓고 가스를 맡게 하는 실험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크게 논란이 됐다. 폴크스바겐의 의뢰를 받은 민간 의학연구팀은 바깥 공기를 차단한 기밀실에 원숭이 10마리를 가둬 놓고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틀어 준 뒤 하루 4시간 그 속에서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 폴크스바겐 디젤 승용차 '비틀' 신형에서 나오는 배출가스를 기밀실로 넣었다.
 
많은 사람이 이 뉴스에 분노했다. 인류의 윤리는 점점 확장돼 이제 동물의 권리를 고민하는데, 여전히 과학에서는 동물을 도구로만 보고 동물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학의 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닌 ‘실험동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동물실험의 역사는 매우 오래전부터
 
실험동물이란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약이나 새로 개발된 화장품의 안전성, 질병의 발생과정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연구나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을 말한다. 야생 상태의 동물을 포획해 그대로 실험에 사용하지만, 정확한 실험을 위해 목적에 맞도록 특정 성질을 갖거나 특정 반응이 일어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동물을 생산하기도 한다.
 
동물실험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시작된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동물을 해부해 생식과 유전을 설명했고, 외과 의사였던 갈레노스는 원숭이와 돼지, 염소 등을 해부해 심장과 뼈, 근육, 뇌신경 등에 대한 의학적 사실을 규명했다. 16세기 베살리우스가 직접 사람 시체의 배를 가르고 몸을 탐구해 인체해부학을 발전시키기 전까지 동물 해부 연구는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현재 과학에서 동물실험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동물실험에 쥐나 토끼, 원숭이, 초파리, 제브라피시 등이 주로 사용된다. 이밖에도 고양이와 개구리, 도롱뇽, 갑각류, 바퀴벌레, 진드기도 실험동물에 예외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200만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실험으로 희생되고 있다.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하기엔 절대 적지 않은 숫자다. 더 큰 문제는 동물실험을 걸친 의약품이나 화장품이라도 인간에게 100%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물실험의 이면
 
동물실험 문제는 1950년대 후반 유럽에서 처음 발생했다. 1953년 독일에서는 진정제 효과가 있는 ‘탈리도마이드’가 개발됐다. 임산부가 이 약을 복용하면 입덧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유럽은 물론 세계 50여 개 나라에 팔렸다. 특히 이 약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개와 고양이, 쥐, 햄스터, 닭 등을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진행했고, 이 실험에서 안전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부작용이 없는 기적의 약’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없다는 이 ‘기적의 약’은 사상 최악의 부작용 사태를 일으켰다. 이 약을 복용한 임산부들이 팔다리가 짧거나 발가락이 들러붙은 기형아를 출산한 것이다. 독일에서만 5천여 명, 세계 50여 개국 나라에서는 1만2천 명의 아이들이 이 약으로 인해 기형아로 태어났다. 4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기형아와 이 약의 상관관계가 밝혀졌고, 판매 금지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문가들은 인간과 동물은 유전자 구조가 100% 같지 않기 때문에 동물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는 물질도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며 동물실험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또 다른 문제는 동물의 권리 침해 문제다. 최근 뉴질랜드 과학자들이 총을 쐈을 때 피가 어디로 어떻게 튀는지 알아보기 위해 살아 있는 돼지에게 총을 여러 발 쏴 보는 실험을 한 뒤 이를 ‘법과학 저널(Journal of Forensic Sciences)’에 발표해 논란이 됐다. 또한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실험용 쥐 몸에 암 종양을 일으키는 물질을 허용치보다 많이 사용해 문제가 됐다. 앞선 두 실험에서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일종의 실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동물보호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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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동물도 인간처럼 괘락과 고통을 느끼는 감수성이 있기에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이제 많은 사람이 받아들인다. (출처: shutterstock)
 
이제는 대안을 모색해야할 때
 
이에 세계 곳곳에서는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을 찾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화장품 안정성 평가 부분에 대해 동물실험 대신할 피부일차자극시험이나 안점막자극시험, 피부감작성시험 등의 방법을 마련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실험 대안 중 가장 획기적인 방법으로 ‘오가노이드’가 꼽히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나 장기세포에서 분리한 세포를 배양하거나 재조합해서 만든 미니장기를 뜻한다. 2009년 네덜란드 후브레히트 연구소의 한스 클레버스 박사가 생쥐의 직장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내장을 만드는 데 성공해 최초의 오가노이드를 선보였다.
 
2013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메들린 랭커스터 박사가 사람의 신경줄기세포를 이용해 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이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자폐증이나 조현병, 파킨슨병 등 다양한 뇌질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위와 신장, 갑상선, 간, 췌장 등도 오가노이드로 만들어져 실험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오가노이드 연구도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오가노이드가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해선 오가노이드 배양에 관한 표준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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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이제 과학계도 동물에 대한 비윤리적인 실험을 차차 줄이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그 시작이다. (출처: shutterstock)
 
동물실험이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안법에 대한 고민은 아직까지도 화장품 분야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2016년 11월 ‘화장품법 개정안’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동물실험을 시행한 화장품이나 원료를 사용해 만든 화장품이 판매될 수 없게 된 수준에 불과하다. 동물도 사람도 행복한 세상을 위해 생명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제품의 안정성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 필요하다.
 
글 :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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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yhun89
  • 평점   별 5점

잘 읽어 보았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 부탁드립니다.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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