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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이학박사, 소행성의 이름으로 새겨지다
<KISTI의 과학향기> 제470호 2006년 07월 12일
지난 4월 16일, 국제천문연맹(IAU) 산하 소행성센터(MPC)에서는 그동안 ‘2002DB1’이라는 임시번호만 있던 한 소행성에 정식으로 명칭이 붙었음을 승인했다. 이 소행성의 새로운 이름은 ‘이원철(Leewonchul)’.
소행성에 한국인의 이름이 붙은 경우는 그동안 꽤 있었다. 한국인의 이름이 붙은 소행성 ‘최무선’, ‘장영실’, ‘허준’, ‘홍대용’, ‘김정호’ 등이 그 예로 이들은 모두 우리 역사상 널리 알려진 위인들이다. 이에 비하면 이원철은 상대적으로 좀 낯선 이름이고, 게다가 역사의 위인들에 비해 작고한지 얼마 되지 않은 현대사의 인물이다. 과연 이원철은 어떤 사람이기에 별에 이름이 붙었을까?
우남(羽南) 이원철은 보성중학교와 오성학교, 선린상업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오늘날의 연세대학교) 수학물리과(數學及物理科)를 1회로 졸업했다. 그리고는 모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1921년에 미국으로 가서 1년 만에 앨비온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가 앨비온 칼리지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은 그 학교 출신으로 연희전문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던 루퍼스(W. E. Rufus) 교수와 벡커(A. L. Becker) 교수의 후원 덕분이었다. 그 뒤 이원철은 루퍼스가 천문학교수로 있던 미시간 대학으로 옮겨 본격적인 천문학 연구를 시작하여 1922년 이학석사를, 1926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기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의 이학박사학위였다.
이원철의 박사학위 논문은 독수리자리 에타별에 대한 분광학적 관찰과 분석을 통해 그 별이 맥동변광성(脈動變光星)임을 밝힌 것이다. 맥동변광성은 시간에 따라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의 한 유형으로서, 별 자체가 스스로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며 밝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원래 변광성이라면 쌍성계를 이루는 두 별이 공전하면서 서로를 가리는 식(蝕)변광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이런 이론으로 설명이 안 되는 변광성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1914년 미국의 섀플리(H. Shapley)가 항성이 수축·팽창하며 밝기가 변한다는 맥동설(pulsation theory)을 내놓았고, 이후 이 학설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들이 잇달았는데 이원철의 연구도 그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원철의 발견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연구 과제였던 섀플리의 맥동설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성실함이 남달랐던 그는 미시간 대학 천문대에서 31.5인치 반사망원경과 프리즘 분광기를 이용해 71회의 분광학적 관측결과를 얻었고, 이를 세밀하게 분석·계산하였다. 이원철의 발견은 미국천문학회 학술회의와 학술 잡지에 실리고, 이 논문으로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바로 귀국해서 모교 연희전문의 교수로 부임했다.
이미 그는 미국 유학 시절 거둔 업적으로 인해 유명인이 된 상태였다.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대상이었던 독수리자리 에타별에 대한 이야기가 당시 잡지 <삼천리> 등에 ‘원철성’으로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이 와중에 그가 이 별을 처음 발견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일제강점기에 식민지의 설움을 겪던 우리 민족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준 인물이었으며, 그가 미국 한복판에서 서양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구 성과를 거둔 사실은 민족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원철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박사학위 이후에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미국에서 하던 천문학 연구를 계속할만한 장비가 없었기에 그는 연구 대신 교육을 통해 학문적인 열정을 쏟아냈다.
이러한 이원철은 모국에서 사실상 국내에 유일하다시피 한 천문학 강좌를 이끌었으며, 연희전문 옥상 천문대에 설치된 15cm 굴절망원경으로 학생들에게 천체 관측도 지도했다. 모두가 1930년대 이전에 이루어진 일로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의 소중한 기록들이다.
이원철은 미국에서 스승이었던 루퍼스가 1935년 한국에 와서 전통 천문학 연구를 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그를 계기로 관상감과 천문·기상에 관한 유물 및 문헌들의 가치와 의미에 주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해방이 되자 군정청 관계자와 만나 관상감 부활 문제를 논의했고, 이어 군정청은 이원철에게 학무국 기상과 과장 자리를 주었다. 이원철은 그 뒤 조선총독부 기상대를 관상대로 재조직하고 관상대장을 맡았으며, 다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뒤에 정식 발족한 문교부 산하 국립중앙관상대의 초대 대장이 되었다.
1950년대 들어서는 인하공과대학 설립과정에 참여하여 초대학장으로 10여 년간 재직하며 신설대학의 기반을 다졌고, 동시에 1952년부터 연희대학의 재단 이사로도 활동하다가 1961년에는 연세대 재단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또 YMCA의 재단 이사와 이사장도 역임하는 등 사회 교육 활동에 많은 기여를 하다가 만년에는 집과 토지 등 자신의 전 재산을 YMCA에 기부하여 마지막까지 사회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이렇듯 이원철은 한국 과학사와 사회교육사에서 온 생애동안 꾸준히 빛나는 자리를 수놓아왔던 것이다. 소행성에 붙은 그의 이름이야말로 실로 영원히 기억될만한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글 : 박상준 과학 칼럼니스트)
소행성에 한국인의 이름이 붙은 경우는 그동안 꽤 있었다. 한국인의 이름이 붙은 소행성 ‘최무선’, ‘장영실’, ‘허준’, ‘홍대용’, ‘김정호’ 등이 그 예로 이들은 모두 우리 역사상 널리 알려진 위인들이다. 이에 비하면 이원철은 상대적으로 좀 낯선 이름이고, 게다가 역사의 위인들에 비해 작고한지 얼마 되지 않은 현대사의 인물이다. 과연 이원철은 어떤 사람이기에 별에 이름이 붙었을까?
우남(羽南) 이원철은 보성중학교와 오성학교, 선린상업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오늘날의 연세대학교) 수학물리과(數學及物理科)를 1회로 졸업했다. 그리고는 모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1921년에 미국으로 가서 1년 만에 앨비온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가 앨비온 칼리지로 유학을 가게 된 것은 그 학교 출신으로 연희전문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던 루퍼스(W. E. Rufus) 교수와 벡커(A. L. Becker) 교수의 후원 덕분이었다. 그 뒤 이원철은 루퍼스가 천문학교수로 있던 미시간 대학으로 옮겨 본격적인 천문학 연구를 시작하여 1922년 이학석사를, 1926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기에 이른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의 이학박사학위였다.
이원철의 박사학위 논문은 독수리자리 에타별에 대한 분광학적 관찰과 분석을 통해 그 별이 맥동변광성(脈動變光星)임을 밝힌 것이다. 맥동변광성은 시간에 따라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의 한 유형으로서, 별 자체가 스스로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며 밝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원래 변광성이라면 쌍성계를 이루는 두 별이 공전하면서 서로를 가리는 식(蝕)변광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이런 이론으로 설명이 안 되는 변광성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1914년 미국의 섀플리(H. Shapley)가 항성이 수축·팽창하며 밝기가 변한다는 맥동설(pulsation theory)을 내놓았고, 이후 이 학설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들이 잇달았는데 이원철의 연구도 그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원철의 발견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연구 과제였던 섀플리의 맥동설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성실함이 남달랐던 그는 미시간 대학 천문대에서 31.5인치 반사망원경과 프리즘 분광기를 이용해 71회의 분광학적 관측결과를 얻었고, 이를 세밀하게 분석·계산하였다. 이원철의 발견은 미국천문학회 학술회의와 학술 잡지에 실리고, 이 논문으로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바로 귀국해서 모교 연희전문의 교수로 부임했다.
이미 그는 미국 유학 시절 거둔 업적으로 인해 유명인이 된 상태였다.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대상이었던 독수리자리 에타별에 대한 이야기가 당시 잡지 <삼천리> 등에 ‘원철성’으로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이 와중에 그가 이 별을 처음 발견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일제강점기에 식민지의 설움을 겪던 우리 민족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준 인물이었으며, 그가 미국 한복판에서 서양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구 성과를 거둔 사실은 민족의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원철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박사학위 이후에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미국에서 하던 천문학 연구를 계속할만한 장비가 없었기에 그는 연구 대신 교육을 통해 학문적인 열정을 쏟아냈다.
이러한 이원철은 모국에서 사실상 국내에 유일하다시피 한 천문학 강좌를 이끌었으며, 연희전문 옥상 천문대에 설치된 15cm 굴절망원경으로 학생들에게 천체 관측도 지도했다. 모두가 1930년대 이전에 이루어진 일로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의 소중한 기록들이다.
이원철은 미국에서 스승이었던 루퍼스가 1935년 한국에 와서 전통 천문학 연구를 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그를 계기로 관상감과 천문·기상에 관한 유물 및 문헌들의 가치와 의미에 주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해방이 되자 군정청 관계자와 만나 관상감 부활 문제를 논의했고, 이어 군정청은 이원철에게 학무국 기상과 과장 자리를 주었다. 이원철은 그 뒤 조선총독부 기상대를 관상대로 재조직하고 관상대장을 맡았으며, 다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뒤에 정식 발족한 문교부 산하 국립중앙관상대의 초대 대장이 되었다.
1950년대 들어서는 인하공과대학 설립과정에 참여하여 초대학장으로 10여 년간 재직하며 신설대학의 기반을 다졌고, 동시에 1952년부터 연희대학의 재단 이사로도 활동하다가 1961년에는 연세대 재단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또 YMCA의 재단 이사와 이사장도 역임하는 등 사회 교육 활동에 많은 기여를 하다가 만년에는 집과 토지 등 자신의 전 재산을 YMCA에 기부하여 마지막까지 사회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이렇듯 이원철은 한국 과학사와 사회교육사에서 온 생애동안 꾸준히 빛나는 자리를 수놓아왔던 것이다. 소행성에 붙은 그의 이름이야말로 실로 영원히 기억될만한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글 : 박상준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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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네요. 앞으로 이름없는 많은 별들에게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이름이 붙기를 기대해 봅니다.
2009-04-08
답글 0
유병기 님은 약간 오해를 하신 것 같군요. 독수리자리 에타별은 항성이 맞습니다. 위 기사에서도 그렇게 적고 있는데요. 다만, 처음에 언급했던 소행성 이야기는, 이원철박사님의 업적을 기려서 새로이 발견한 소행성에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이원철 박사님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이 글 덕분에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게 되었네요. 자랑스런 과학자 분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자긍심이 느껴집니다.
2006-07-27
답글 0
좋은 기사내용입니다만 독수리자리 에타는 소행성이 아니고 항성입니다. 맥동변광성은 오래된 항성의 일종입니다. 행성은 자채적으로 빛을 내지 못하고 항성의 빛을 반사하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같은 별을 말하고 항성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말합니다. 소행성은 행성중에서 작은 행성을 말하며 주로 화성의 공전궤도와 목성의 공전궤도 사이 많이 있습니다.
2006-07-19
답글 0
한국의 훌륭한 과학자이고 인격자인 이원철 박사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어서 젊은 세대가 과학자를 희망하고,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존경스러운 삶을 우리국민들이 본받았으면 좋겠다.
2006-07-14
답글 0
와...
2006-07-13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