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실험용 쥐가 본 ‘실험동물 보호법’

<KISTI의 과학향기> 제687호   2007년 11월 30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자신의 힘으로 자아를 밝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에(라고 해봐야 인간의 수명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지만) 포기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자료가 있기 때문에 나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나는 쥐다. 하수구를 기어 다니거나 음식점의 쓰레기통을 뒤지지는 않는다. 대신 하얀 옷을 입은 인간들이 시시때때로 내 용태를 관찰해 준다. 내 건강의 변화를 점검하고 특이한 사항을 발견하면 기뻐서 펄쩍 뛰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즉, 나는 실험용 쥐다. 그 중에서도 유전자 변형을 통해 지능을 향상시키는 실험군(群)에 있다. 약 4백의 쥐가 나와 같은 실험군에 들어 있다.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주겠다. 나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글을 읽을 수 있다. 우리 실험군 중 유일하다. 이 실험실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은밀하게 숨긴 채 오랫동안 이곳을 관찰해 왔다.

지금 나의 관심은 온통 최근 생긴 고민거리에 쏠려있다. 다름 아닌 ‘고통’의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의 신문에서 기사 한 토막을 본 뒤부터다. 작년, 그러니까 인간의 달력으로 2006년 12월 22일 ‘동물 실험에 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기사를 봤다. 불필요한 동물 실험을 줄이고, 지나친 고통을 유발하는 실험을 금지하자는 법안이다.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연구실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은 그런 기사에 참 무심하다. 하루는 한 여자 연구원이 불치병에 시달리는 아이 이야기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고 왔다. 그리고 아이의 삶이 너무 측은하다며 하루 종일 그 얘기만 했다. 그러면서 내 바로 옆에서 앞발로 장난을 치던 동료 쥐 하나를 번쩍 집어 들더니 정체 모를 약을 주사하고 던지듯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 운 없던 친구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바대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고통’이다. 우리 실험용 쥐들에게 고통은 태어나면서부터 예정된 미래일지 모른다. 바로 옆의 ‘유전자(사실 그게 무언지는 잘 모른다) 변형군’에 속한 쥐 중에는 희한한 모습을 한 녀석들이 있다. 털이 듬성듬성 난 녀석, 귓불이 머릿속으로 들어간 녀석, 꼬리가 없는 녀석 등 다양하다. 뭐, 나도 외모를 가지고 그런 녀석들을 놀려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녀석들은 끝없이 고통을 호소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프다는 녀석에게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어보니 태어날 때부터 아팠단다. 암 덩어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태어나는 녀석도 있고 비대한 심장을 달고 태어나는 녀석도 있다. 사실 내가 비교적 냉담한 어조로 얘기하고 있지만 실험실은 우리 쥐의 비명소리로 가득하다.

다른 곳에서 새로 들어온 쥐에게 듣거나 신문 기사를 보면 이런 고통은 쥐뿐 아니라 다른 종의 실험동물에게도 흔한 일인 것 같다. 두개골을 열고 머리에 전극을 꽂은 원숭이의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물론 원숭이도 아니면서 그 원숭이가 고통스러웠을지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대답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쥐에 대한 것뿐이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나는 그 뒤 ‘실험동물 보호법’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의 복잡한 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으니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우리 실험용 쥐들의 고통이 언제부터,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신문 기사들을 놓치지 않고 읽기 위해 노력했다.

좋은 소식이 있었다. 해당 법률이 2008년부터 시행될 것이며 앞으로 동물을 실험에 사용할 때 고통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면 마취제를 사용하며, 생명을 앗아야 할 경우 안락사(아직도 타인에 의한 죽음과 안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쥐인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를 시킬 것이라고 한다. 뉴스의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희망적인 상황이 오리라는 얘기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기사가 하나 있다. 2007년 9월 28일자 뉴스다. 인간들이 ‘농림부’라고 부르는 곳과 보건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라고 부르는 곳이 서로 다투고 있는 것 같다. 농림부는 올해 초 개정된 동물보호법에서 이 문제를 충분히 다루니 불필요한 중복법안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식약청은 실험동물에 대한 부분은 따로 떼 전문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립의 요점은 각 법안이 별도의 실험동물 관련 위원회 설립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칫하면 동물실험 운영기관 하나에 농림부의 ‘동물실험윤리위원회’와 식약청의 ‘실험동물운영위원회’가 동시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또 하나로 통일된다 해도 누가 위원회의 관리, 감독을 맡을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이미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의 하위 시행령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구체적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나와 우리 쥐들의 고통이 줄어들 날이 생각보다 늦게 올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이미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챘겠지만) 나는 나와 함께 들어온 실험용 쥐 중 마지막 남은 쥐이기 때문이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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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4점

실험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니 어쩔수 없이 실험용 동물들을 사용해야 겠지만, 그 동물들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취해져야 겠지요. 늦었지만 이법이 시행되어 조금이라도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2009-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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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아무리 실험용 쥐라지만 읽고 보니 쥐의 운명도 참 가엾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우리의 과학이 더 발전하고 불치병들을 치료하기 위해선 마땅한 대안이 없겠지요. 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만이 작은 위안이 될수 있을까요?

200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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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 평점   별 5점

오직 인간을 위해서, 인간에 의해.. 희생 아닌 희생을 해야하다니..
웃기는 일이 아닐수 없겠죠.
인간만이 가장 우월한 고등생물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죠(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실험용동물들이 불쌍하고, 그런 인간들에게 잔인하다고 말하면서도 현재 우리에게는 필수 불가결하다라는 것을 알고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해야하나요?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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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 평점   별 1점

무슨! 인간도 탄소화합물 덩어리에 불과하구만!
그런 인간중심적인 생각은 집어치우삼

200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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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길
  • 평점   별 5점

어째서요? 인간이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20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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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규
  • 평점   별 5점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해서 현재는 시뮬레이션으로 적은 실험으로 혹은 기존 자료로 입력하여 가상 실험을한 결과가 직접 실험을한 것과 유사하거나 더 낳은 결과를 보이는 것까지 과학이 발전하고 있으니 과거의 직접적인 실험은 앞으로는 보다 적어지겠지요 ! 자연에 뭐하나 불필요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기고 더 낳은 것을 위하여 소멸되어가는 것 아닌가요 ! 하다못해 바퀴벌레가 징그럽다고 하지만 아마존에서는 먹이사슬의 최하단부중의 중요한 단계라고 하니 바퀴벌레도 다 쓸데가 있군요 !

20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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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 평점   별 5점

문득 731부대의 마루타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저 쥐들이 지각이 있고 생각을 하고 느낄 수가 있다면
당시 마루타라 불리던 실험대상들이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끼고 있겠죠..
731부대는 정말 잔혹한 짓거리를 많이 했지만
그 자료를 인수한 미국의 계속된 연구로 인해
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네요..

200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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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 평점   별 5점

쥐는 죽여도 괜찮다고 하시는 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쥐가 죽어 갈때 그 고통을 생각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세계에서도 남의 괴로움과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양 그렇게 할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200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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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의사
  • 평점   별 5점

의학은 전쟁과 함께 발전해 왔다지요. 즐비한 주검을 때로는 멀쩡한 산사람을 모르모트 삼아 맘껏 실험을 할수 있었으니까요. 고양이 쥐생각도 좋지만 시신기증이나 임상실험대상이 되는 것이 보편화돼야겠죠.

200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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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 평점   별 5점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동물 실험 특히 쥐는 많은 마리수를 대상으로 실험하기에
부득이 비윤리적일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지요..
저도 예전에 수천마리를 보냈습니다.
딱 한번 고사머리 사와서 위령제 지내줬지요.
필요한 만큼.. 그리고 실험하는 동안 함부로 대하지는 맙시다.

200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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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발전
  • 평점   별 3점

발전하기 위해서는 팍팍 쥐를 사용하십시오.
쥐는 죽던 말던 상관안해요. 괜히 사람이 보니까 측은하게 느껴지는 거지.
쥐는 지가 죽던말던 번식만 많이 하면 좋아해요.
쥐는 복잡한 탄소화합물 덩어리에 불과해요.
실험은 목적자체가 인간을 위한것이니까 쥐는 죽어 마땅해요.
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뭐가 문제죠?
예를 들어 멸종위기의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그들이 멸종되면 인간의 이득에 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쥐는 멸종위기도 없고 많이 죽인다고 실험하는 사람만 정신적으로 죄책감 느끼지 안느끼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많이 죽여도 상관 없어요. 인간은 내가 실험 대상이 될수도 있으니까 인간으로 실험하면 X

200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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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진
  • 평점   별 5점

어떻게 보면 다른 대안이 없기때문에 동물들을 실험에 사용하고 있겠지만
인간위주의 그런 실험들로 인해 동물들이 고통을 받는 다는것에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동물 실험을 대체할 다른 것이 아직까진 없으니까 마음이 무겁습니다.

2007-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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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고도
  • 평점   별 5점

이러한 일들이 예전에(?)는 사람에게 행하여져 왔다는사실이겠죠.
단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은 자국의 보건을 위해서라면
괜찮다고 생각을 했을겁니다.

200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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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 평점   별 5점

휴...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네요...
슬퍼지네요.

200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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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닝 맨
  • 평점   별 5점

넉아웃 실험용 쥐 한미리의 가격이 비싼건 소한마리 이상이고 대략 돼지 한마리 가격은 한다. 그정도의 몸값에 법률적 보호가 뒤 따른다면 다른 양계장 닭이나 양돈장의 돼지보다 행운이라고 할 수있지 않을까? 그리고 88세대 보다 훨~~ 나은거 아닐까? 우리는 보호법은 생각도 못한다.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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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석님...
  • 평점   별 5점

인간보다 고등한 동물이 있었을때 그들이 우리를 대상으로 저렇게 실험한다면 어떻겠습니까?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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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
  • 평점   별 5점

감동입니다.늘 가슴아파하던 부분인데, 어쩔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죠...
오직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희생 아닌 희생이군요...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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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이
  • 평점   별 5점

인간을 위한 다른동물의 희생이 옳다는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보더 더 우월하단 생각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닐까요-과연 다른 동물들을 죽이고, 괴롭히면서까지 인간에게 더 이롭게 할만큼 인간이 대단한 존재인지, 다른동물들은 하찮은 존재인지,,,결코그만둘수는 없겠지만, 아쉬울수 밖에 없는 현실이네요-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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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 평점   별 5점

참... 저들을 살리자니 인간이 위태로워 지고,
우리가 살자니 실험용 동물들에게 너무 잔인한거 같고..
중간지점에 뭔가 없을까?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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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석
  • 평점   별 5점

글쎄요?

인간을 위해서라면 희생되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도 고통을 느끼겠지만..

저들 생각할바에는 우리들 생각을 좀더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네요...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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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규
  • 평점   별 5점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참신하고 재미있네요. 누구든지 쉽게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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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 평점   별 5점

재밋게봤는데 슬픈현실이네요.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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