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언 발에 오줌 누기’ 속담 속에 숨은 과학은?

<KISTI의 과학향기> 제528호   2006년 11월 24일
날씨가 제법 매서워졌다. 요즘에는 이중창이 있지만 예전에 겨울채비를 할 때는 두꺼운 테이프로 창문과 창틀 사이를 막았다. 이때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안 된다. 그 틈을 비집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해 ‘바늘구멍 황소바람’이라는 속담이 있다. 추운 겨울에는 작은 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도 황소처럼 매섭다는 뜻으로, 구멍 난 문풍지를 제대로 막을 형편도 안돼 추운 겨울을 나기 힘들었던 서민의 고충이 숨어있다. 하지만 속담의 속뜻과는 별개로 실제 바늘구멍으로 부는 바람은 속담처럼 활짝 열린 창으로 부는 바람보다 훨씬 거세다. 왜 그럴까?

1738년 발표된 베르누이의 정리에 따르면 유체는 좁은 통로를 지날 때 속력이 증가한다. 이것은 넓은 통로를 지나던 공기 분자가 좁은 통로로 들어서면서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속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속력은 유체가 지나는 통로의 넓이에 반비례하니, 활짝 열린 창에 부는 바람보다 바늘구멍 바람이 빠른 것이 당연하다.

오늘날 베르누이의 정리는 분무기에서부터 유압프레스, 그리고 비행기 날개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니,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 조상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훨씬 일찍 과학강국이 됐을지도 모른다. 속담은 여러 사람들의 경험이 누적돼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를 잘 들여다보면 과학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과학적 원리가 숨은 속담 중에는 특히 기후와 연관된 것이 많은데 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우리 조상의 관심이 날씨에 집중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중 ‘마구간 냄새가 고약하면 비가 온다’는 속담은 저기압일 때 비가 온다는 원리가 담긴 속담이다. 저기압이면 위에서 누르는 공기의 압력이 작아져 냄새 분자가 공기 중에 쉽게 퍼진다. 마구간 냄새가 심하게 날수록 저기압이라는 뜻이니 비올 확률은 자연히 높아진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온다’는 속담에는 습도가 높을 때 비가 온다는 원리가 담겼다. 습도가 높으면 벌레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나뭇잎 등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벌레를 잡아먹는 제비는 낮게 날아야 한다. 벌레야 눈에 잘 보이지 않으나 제비는 쉽게 눈에 띄기에 이런 속담이 생긴 것이다.

기후 다음으로는 건강·의학에 관련된 속담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건강은 변치 않는 사람들의 관심인 것 같다. 이중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속담은 우리 조상들이 간이 소화기관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 간은 쓸개즙을 분비해 지방의 소화를 돕고, 소장에서 흡수한 모든 영양분을 해독·가공해 심장으로 전달한다.

또 건강·의학 관련 속담 중에 ‘적게 쓰면 약, 많이 쓰면 독’이라는 말은 사실 대부분의 음식과 약에 적용되지만 현대과학에는 이 속담에 꼭 맞는 재미있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보톡스’다. 보툴리누스균이 만드는 독소는 매우 강력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키지만 과학자들은 이 독소를 수십만배 희석시켜 약품으로 만들었다.

보톡스는 처음에 안면 근육을 국소적으로 마비시켜 사시(斜視)를 치료하는데 쓰였고, 안면 경련,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굳는 증상 등 신경이상으로 인한 경련치료에 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잔주름 제거에 특히 효과가 좋다는 것이 알려져 미용을 목적으로 쓰인다. 그야말로 ‘많이 쓰면 독이지만, 적게 쓰면 약’인 것이다.

속담 중에는 물리·화학의 원리를 설명해주는 것도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파동의 굴절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다. 음파는 공기를 통과할 때 온도에 따라 다른 속도를 가진다. 즉 온도가 낮을수록 공기 입자들의 속도가 낮아 음파의 전달속도가 늦고, 반대로 온도가 높을수록 공기 입자들의 속도가 높아 음파의 전달속도는 빨라진다.

낮에는 태양열을 받아 지표면 근처의 공기는 뜨거워지고 상공의 공기는 상대적으로 차갑다. 따라서 낮에 소리를 지르면 음파가 상공 쪽으로 휘어 새가 듣기 좋게 되는 것이다. 밤에는 반대로 지표면이 온도가 낮고, 상공이 상대적으로 따뜻해 음파가 지면 쪽으로 휘어 쥐가 듣기 좋게 된다.

또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속담은 물질의 열전달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다. 발이 얼었을 때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오줌을 누면 잠시 따뜻하겠지만, 이내 오줌이 얼어붙어 오줌 누기 전보다 훨씬 더 춥게 된다. 즉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 맨발보다 오줌 묻은 발이 더 추울까?

이것은 기체보다 액체가 열전달을 더 빨리하기 때문이다. 공기가 아무리 차가와도 기체는 발에 냉기를 전달하는 속도가 늦다. 반면 액체는 기체보다 수백배 빠르게 냉기를 전달한다. 이 때문에 잠시 따뜻했던 발은 이내 온기를 잃고 오히려 차가운 냉기가 엄습하게 된다. 젖은 발로 다니면 쉽게 동상에 걸리는 이유다.

우리는 종종 과학을 절대 진리로 여기며 자연현상을 이미 알고 있는 과학 원리에 끼워 맞추려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속담 속에 담긴 과학을 잘 들여다보면 과학은 단지 자연 현상을 잘 관찰해서 설명해 놓은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랜 경험의 속담, 풍습, 문화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지만 과학보다 더 과학적인 자연의 법칙이 숨어있지 않을까. (글 : 김정훈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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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오랜 경험의 속담, 풍습, 문화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지만 과학보다 더 과학적인 자연의 법칙이 숨어있지요. ^^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정말 대단합니다. ^^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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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5점

재미있는 속담이야기 네요. 속담의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군요. 바늘구멍 황소바람은 베르누이의 정리로, 마구간 냄새가 심하면 비가온다 라든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언발에 오줌누기도 모두 정말 과학적 원리가 담겨있는 속담이네요.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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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sack
  • 평점   별 5점

속담 속 과학이라...
앞으로는 속담을 외우지만 말고 왜 그런지 잘 생각해봐야겠네요.
그런데 누구 내가 왜Cossack라는 이름쓰는지 아는 사람 있음 가르쳐줘요.
나도 왜 쓰는지 모르겠어요....ㅡㅡ 아무나 답변좀

200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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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 평점   별 5점

우리 조상들이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조상님들은 농사를 지으셔서 날씨에 특히 민감하셨던 것 같네요.ㅋ
잘 읽었습니다.

200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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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란
  • 평점   별 5점

유익하고 재미있었어요!
이제는 가물가물한 중고등학교시절 기본과학지식...나도 생활에서 발견,적용 하면서 살고싶삼~

200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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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 평점   별 5점

먼저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
지적해 주신 내용은 모두 맞는 말입니다.

사실 문풍지 안쪽은 닫힌 공간이고, 밖은 열린 공간이라서 베르누이의 정리가 정확하게 적용되긴 힘들지만, 원리가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또 지적해주신 저기압과 부력의 이야기는 원칙적으로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저기압이기 때문에 누르는 힘이 작아지고 부력이 세지는 것이지요.

이번 글이 Fun에 실렸기 때문에 지적해주신 부분들을 정확히 반영하기보다는 그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습니다. 그점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과학의 숲을 보는 즐거움
KISTI 과학향기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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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 평점   별 5점

좋은글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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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 평점   별 5점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즉 밀도가 낮을수록 음파의 전달속도가 빠르고, 반대로 밀도가 높을수록 음파의 전달속도는 느려진다.'
라고 기자분이 쓰셨는데.. 그럼 고체>액체>기체 의 내용과 반대의 뜻이 되지 않을까요?
헷갈리네요... 많이..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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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향기
  • 평점   별 5점

먼저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

일단 빛이나 소리나 모두 파동이기 때문에 굴절원리는 같습니다.

단 빛은 매질이 없이 전달될 수 있는 파동이기 때문에 방해가 없는 진공상태에서 가장 빠릅니다.

소리는 매질에 따라 전달속도가 달라지는데 고체>액체>기체의 순서로 전달됩니다. 또 같은 기체에서는 공기의 움직임이 빠른 곳에서 더 빠르게 전달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과학의 숲을 보는 즐거움
KISTI 과학향기

200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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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
  • 평점   별 4점

우리 조상들의 이 모든 사실을 알고 했다면..
도대체..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똑똑했다는 것인가요..?
제 생각에는... 저런 정보들은.. 어쩌다보니 그냥 딱 들어맞아 떨어진것으로 보이네요..

20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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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씽
  • 평점   별 5점

그냥 습도가 높아서 부패의 정도가 높아져서 그런게 아닐까요?
습도가 높으면 비도 올 수 있겠고

200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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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 평점   별 5점

그런데.. 빛의 굴절과 소리의 굴절 원리가 똑같나요? 오래전에 배웠던 거라.. 가물 가물... 그런데.. 매질의 밀도가 높으면 전달속도가 더 빠르지 않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왜 그 기차소리보다 레일을 통한 진동이 훨씬 빠르죠?
그런데... 물로 입사하는 빛이 굴절하는 걸 보면.. 밀도가 높을 때 속도가 느려져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설명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200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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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 평점   별 5점

베르누이정리? 유로의 면적과 속도의 관계는 연속의 법칙 아닙니까? 베르누이정리는 유로가 작으면 연속의 법칙에 의해서 빨라지기 때문에 압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지 빨라지는 원인을 말하는 것은 아닐텐데요?
'저기압이면 위에서 누르는 공기의 압력이 작아져 냄새 분자가 공기 중에 쉽게 퍼진다?'. 저기압땐 부력이 작아서 냄새분자가 퍼지지 못하고 지상에 오래 남아있는 것 아닌가요?

200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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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 평점   별 5점

와우 1등 =ㅅ=.... 그런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는 어쩌다 그렇게 된게 아닐까 하는..

200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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