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참나무 키우는 다람쥐의 건망증

<KISTI의 과학향기> 제656호   2007년 09월 19일
참나무란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참’나무라면 ‘진짜’나무라는 뜻인데 과연 어떤 나무가 진짜 나무일까. 그런데 식물도감에는 ‘참나무’란 이름이 없다. 대신 ‘참나무속’라는 이름이 나오고 여기에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을 통칭해 참나무라 일컫는 이유는 서로가 유전적으로 가까워 서로 다른 나무끼리 쉽게 인연이 맺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면 떡신갈나무로 불린다.

상수리나무가 참나무속 나무와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상수리나무의 원래 이름은 ‘토리’였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간 선조는 제대로 먹을 음식이 없자 토리나무의 열매인 토리로 만든 묵을 먹었다. 묵 맛에 빠진 선조는 왜란이 끝나고 궁에 돌아온 뒤에도 토리로 만든 묵(도토리묵)을 즐겨 찾았다. 그래서 상시 수라상에 오르게 돼 ‘상수라’가 됐다가 ‘상수리’로 불리게 됐다. 도토리는 떡갈나무의 열매를 가리키는 단어였지만 오늘날 도토리는 참나무속 나무의 열매를 통칭하는 표현이 됐다.

가을철 산에 오르다보면 재미 삼아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자루를 들고 나선 사람들도 많다. 그만큼 참나무는 해마다 많은 양의 도토리를 만들어 낸다. 얼마나 많은가 하면 풍년인 해는 성숙한 참나무 한 그루에서 1만개가 넘는 도토리를 만들고 흉년인 해에도 최소 300~400개의 도토리를 만든다. 참나무는 왜 이렇게 많은 양의 열매를 만드는 것일까?

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 꽃이나 열매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키가 낮은 야생화는 꽃을 만드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이들은 4월 중순이 되기 전까지 암꽃에 꽃가루가 날아와 수분에 성공해야 다음해 자손을 기약할 수 있다. 5월이 넘어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그늘에 가려 아무리 화려한 꽃을 피워도 ‘중매쟁이’ 벌과 나비가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나무는 씨앗을 품고 있는 열매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대부분 나무에는 새가 살기 때문에 벌과 나비가 찾아와도 새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게다가 예쁜 꽃을 만들어낸들 숲 속 그늘에 묻혀 보이지 않을 게 뻔하다. 따라서 나무는 근친교배의 약점을 감수하고서라도 바람을 중매쟁이로 택했다.

나무는 꽃에 공을 덜 들이는 대신 열매를 만들어 산짐승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을 택했다. 산짐승이 열매를 먹고 먼 곳에서 똥을 싸면 소화가 안 되는 씨앗은 그대로 토양에 떨어진다. 힘 안들이고 먼 곳까지 자손을 전파할 수 있는 셈이다. 참나무가 선택한 산짐승은 다람쥐나 청설모다.

참나무가 만드는 도토리는 몸집이 통실해 바람을 타지도 못하고 나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나 도토리를 주로 먹는 다람쥐나 청설모는 도토리를 입에 물고 좁게는 수십m에서 수km까지 이동할 수 있고, 참나무가 자라는 곳보다 더 높은 고지대에도 간다. 이어 겨울철 식량을 저축하기 위해 도토리를 땅속에 묻는다. 그런데 다람쥐와 청설모는 머리가 나빠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를 묻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람쥐나 청설모는 땅에 묻은 도토리의 95%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땅에 묻힌 도토리는 싹을 틔운다.

이와 달리 쓰러진 나무나 바위, 낙엽 위로 떨어진 도토리들은 착지를 잘못한 탓에 싹을 틔울 수 없다. 여기서 뿌리를 내린다 해도 지탱하고 자랄 흙이 없는 까닭이다. 또 땅에 묻혔다고 싹을 틔우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도토리는 멧돼지와 곰 같은 대형 포유류와 바구미, 거위벌레 같은 곤충의 일용할 양식으로 쓰인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싹을 틔우는 참나무 개체는 약 10%. 물론 이들이 모두 성숙한 나무로 자란다는 보장은 없다. 봄철 어린 새싹을 뜯어먹는 초식동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고, 여러 해 동안 산불의 피해로부터도 살아남아야 한다. 모든 시련을 딛고 구사일생 살아남아야 높이 솟은 나무가 될 수 있다.

비록 처음 뿌려진 도토리에 비해 살아남는 비율은 낮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양의 도토리를 만들기 때문에 참나무는 숲의 주인공이 된다. 소설에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있듯 숲에도 ‘천이’라는 개념이 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황무지에는 볼품없는 풀이 생명을 싹틔우고 열악한 환경에도 잘 견디는 침엽수가 뿌리를 내린다. 침엽수가 무성한 숲을 이루면 비로소 나무 그늘아래 보호를 받으며 자랄 수 있는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가 자란다. 제주도와 남부 해안지역을 제외한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은 숲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참나무가 숲의 주인공이 된다.

게다가 참나무가 숲속 동물에게 퍼주듯이 베푸는 이런 행동은 생태계를 지키는 풍요로운 자산이 된다. 참나무 숲이 전나무와 잣나무 같은 침엽수 숲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가 어울려 산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고조에 이른 숲은 산불이나 벌목, 도로건설 같은 인위적인 교란만이 없다면 종 다양성이 가장 높은 상태를 유지한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좋은 것’을 일컬어 ‘참’이란 단어를 붙이고 ‘나쁜 것’을 일컬어 ‘개’라는 단어를 붙였다. 가령 전라도에선 먹을 수 있는 꽃인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르고 독이 있어 못 먹는 철쭉을 ‘개꽃’이라고 불렀다. 참나무의 학명인 ‘퀘르쿠스’(Quercus)도 라틴어로 ‘진짜’, ‘참’이란 뜻이니 동?서양의 마음이 통했나 보다.

인류는 참나무로부터 목재와 땔감, 버섯, 도토리 등 여러 가지를 얻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참나무에게 무엇인가 베풀어야 할 때가 됐다. 우리 숲이 훌륭한 모습을 갖추도록 참나무를 제대로 가꾸지는 못하더라도, 가을철 얼마간의 도토리를 남기는 여유는 지녀야 할 것이다. 숲에 아낌없는 양분을 주는 참나무를 보노라면 문득 “강물이 바다로 되돌아가듯, 베풀어진 물건은 준 자에게 되돌아간다”는 중국 속담이 떠오른다.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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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피난길에 쑤어먹은 묵을 수라상에 올려 상수라-> 상수리가 되었다는 유래를 보니 재미있네요. 사실 자연은 우리인간에게 많은것을 줍니다. 공기,먹을거리, 그늘, 땔감 인간도 자연에게 베풀어야 다시 인간에게 자연은 더많은 것을 베풀것입니다.

200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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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룡
  • 평점   별 5점

서금영님, 좋은 글 감사드리며, 함자 기억하겠습니다.고을원이 부임하면 상수리를 심었다는 고사도 있더군요. 구황식물이기 때문. 미국에서 박물관에서 본 4000년, 6000년 짜리 둥치는 모두 참나무 더군요. 오크 tree는 튼튼하여 가구목으로도 좋으나, 무거운 것이 흠이지요.숲의 마지막 이 참나무란 내용은 조금 의아합니다. 침엽수인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로 가 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침엽수는 스스로 다른 식물이 살지 못하도록하는 효소를 방출한다더군요ㅣ. 그래서 동유럽 산악은 온통 수백년 묵은 전나무 숲입니다. 목재로 아주 좋지요. 헐벗은 땅에 숲이 진행될 때 일착으로 오는 것이 싸리와 아까시, 그리고 오리나무더군요. 이들이 벌거숭이 땅을 기름지게 하더니, 다음에 들어서는 나무가 소나무, 조금 울창해 지면, 반 음지에서라야 초년 생장이 되는 고급 수종, 전나무가 자라고, 그 틈틈으로 진달래들이 자라더군요. 이때 침엽수림으로 진행되지 않아야 참나무 숲으로 가는 듯 합니다. 저는 전공자가 아니고, 그냥 재미있어 관찰한 것이니, 제가 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참꽃, 개꽃은 전라도 지방만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서부경남에서 자랏는데, 그 동네에서도 전부 참꽃, 개꽃이라 합니다. 서금영님? 동아사이언스, 가끔 들리겠습니다.

200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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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권봉
  • 평점   별 5점

다람쥐가 참나무를 키운다는것은 바늘에 실가는격이다 자연의 섬리에 따라 삼부상조하는 이치이나 요즘에는 우리주위의 야산이나 깊은 산에서도 다람쥐 보기가 힘들다는것은 누구나 공감할것이다 왜냐 그이유는 외지에서 들어온 청솔무 가 자기영토를 확장하기위해 다람쥐를 쫏을 뿐만 아니라 아에 물어 죽이기 때문에 다람쥐가 멸종위기에 있으며 또한 번식력이 강하여 세를 확장함은 물론 잣나무의 잣송이를 갈가먹어 잣나무도 수난을 당하고있다 우리집 뒷산에는 5~6년 전만해도 다람쥐가 많았는데 지금은 한마리도 없다고본다 다람쥐가 없으므로 참나무가 번식되지못하고 76년도에는 참나무 고사병이 발생하여 많은 참나무가 고사하였다 본인은 참나무 키우는 다람쥐의 건망증 이라는 테마는 옛 이야기같은 느낌이든다 현재 산에는 참나무가 고목으로 힘을 잃어가고있다 하루속히 청솔무를 퇴치하고 참나무를 보호하고 다람쥐를 보호하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다람주의 아름다은 역활을 계몽함이 옳다고 본다 다람쥐의 역활에 대하여는 아주 좋다고 본다

200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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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종
  • 평점   별 5점

좋은 정보입니다.
야생화와 나무들의 꽃에 대하여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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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
  • 평점   별 5점

아주 잘 봤습니다. 재밌었어요

200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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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
  • 평점   별 5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조상들도 자연과 어울려 살았는데
지나친 개발과 산업화로 이 모든게 파괴되니 안타깝네요..
우리모두 숲에 아낌없이 돌려주는 참나무의 넉넉함을 배웠으면 해요.. ^^

200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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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원
  • 평점   별 5점

좋은 내용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와 닫는 군요. 숲을 아끼지 않는 우리가 그래도 돌아갈 숲이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200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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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사랑
  • 평점   별 5점

참나무의 넉넉한 정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죽어서도 표고버섯을 내려주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200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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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 평점   별 5점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나무라고 부르는데 아카시나무라고 불러야 옳습니다. 아카시아나무는 동남아시아의 열대림에 살고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는 수종입니다.

더불어 아카시나무가 재목으로 쓸 수 없으니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일반인이 갖기 쉬운 선입견입니다. 아카시나무의 수명은 길지 못해 대부분 30년 정도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수명을 다합니다. 또한 아카시는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한 헐벗고 척박한 토양(가령 탄광촌이나 산사태 절개지 등)에서 잘 자라며, 별도의 화학적인 비료가 없더라도 대기 중의 질소를 뿌리로 토양에 고정해, 천연 질소비료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자연 생태계에 이로운 나무 가운데 하나 입니다.

오히려 요즘은 60~70년대 벌거숭이 산에 심어진 아카시나무가 참나무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니, 걱정은 안하셔도 될 듯합니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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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덕
  • 평점   별 5점

산에 올라보면 옛날과는 달리 참나무의 수가 줄었어요,그 대신에 아카시아가 많이 번창했어요, 물론 꿀을 얻으니까 좋은 점도 있으나 아카시아는 재목으로 쓸수가 없습니다,참나무라도 많이 키워서 재목을 얻어야할거에요, 시멘트는 독성이 있어서 결국에는 사람이 큰 해를 입게될지도 모르니까요,우리나라에 애들이 줄어드는 이유가 이 시멘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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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 평점   별 5점

좋은글 감사합니다. 참나무가 뭔지 오늘 처음알았네요.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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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 평점   별 5점

참꽃하니까 진달래 화전이 생각나네요. 찹쌀반죽을 한 후 둥글넙적하게 만들어 그 위에 진달래 꽃 잎을 얹어서 구우면 보기에도 그만인 진달래 화전이 뇌리를 스치네요.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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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간
  • 평점   별 5점

이래서 이런 시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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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야, 쳇바퀴를 돌려라
- 손택수

다람쥐의 건망증은 참으로 위대하다
다람쥐가 땅속에 묻어놓고 잊어버린
도토리들이 자라서 상수리나무가 되었다면
상수리나무가 이룬 숲과
숲이 불러들인 새울음소리,
모두가 다 다람쥐의 건망증 덕분이 아닌가
한겨울 눈이라도 내리면
파묻어논 양식을 도무지 찾지 못해
부르튼 두 손을 부비며 떨고 있었을 다람쥐
그 차디찬 시장기에 가슴 한쪽이 찌르르 아파오긴 하지만
다람쥐의 건망증 때문에 세상은
그나마 간신히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양볼이 뽈통하게 튀어나오도록 양식을 거두고
언젠가 고 작은 손이 부르트도록
땅속 깊이 심어놓은 한 톨 위에 올라가 무심히
뛰어놀고 있는 다람쥐,
제가 본 세상을 온전히 기억하고 싶어
자신의 기억 한쪽을 애써 지워버렸나보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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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 평점   별 5점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매년마다 도토리 수확하려고 별짓다하는 거 보면 눈쌀이 찌뿌려지던데...
숲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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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 평점   별 5점

밤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모두 밤이 열리는 나무일까요? 사실 이 가운데 두 나무는 친척이고 한 나무는 친척이 아니죠.ㅎㅎ

미리 말씀을 드리면 참나무와 밤나무는 친척입니다. 기회가 되면 울릉도에 자생하는 너도밤나무를 주제로 세 나무에 얽힌 관계를 밝혀드리겠습니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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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정
  • 평점   별 5점

베풀어진 물건은 준 자에게 되돌아간다. 라는 속담이 마음에 와닸네요. 도토리에 관련된 이야기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숲을 지키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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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차이
  • 평점   별 5점

좋은 내용입니다. 다음에도 부탁 드릴께요.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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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Kim
  • 평점   별 5점

산에 오르면 제 아이가 도토리를 너무 좋아합니다. 다음에 함께 산에 올라 얘기해 줘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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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점   별 5점

잘 봤습니다. 그런데 밤나무,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등에 관한 얘기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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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경
  • 평점   별 5점

간단하면서도 몰랐던 사실들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도토리에 숨은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니,..산에 가면 도토리가 예사로보이지 않을 것 같네요. 많이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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