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O형 부모, AB형 자녀 가능한거야?

<KISTI의 과학향기> 제523호   2006년 11월 13일
어느 유전자 감식 회사의 문의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남편과 저는 모두 O형입니다. 그런데 아기가 A형이에요. 아기는 남편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남편과 저의 혈액형은 모두 확실한 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요. 남편 몰래 유전자 검사를 받고 싶은데 남편의 머리카락만으로 가능한지요?”

상담게시판 담당자는 모근(毛根)이 달린 남편의 머리카락을 보내면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으니 전화 상담을 받으라는 답글을 남겼다. 남편과 똑같이 생겼으니 남편의 애일 가능성이 높다. 유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거짓말 하지 않는 유전자’가 문제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O형이면 아기도 O형이어야 하는 게 정상적인 중학교 과학교육을 받은 사람의 상식이지만 이 상식도 예외가 있다.

O형 부모 사이에서도 A형이나 B형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 부모의 어느 한쪽 혈액형이 ‘봄베이(Bombay) O형인 경우다. 그리고 부모가 모두 봄베이 O형이라면 AB형 아기도 가능하다. 봄베이 O형은 처음 발견된 인도의 봄베이 지역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봄베이 혈액형을 이해하려면 중학교 생물 시간에 배운 ‘유전’을 잠깐 되새겨 보아야 한다. ‘유전자형’과 ‘표현형’이란 단어가 기억나는가? ABO 혈액형에서 A, B, AB, O형 혈액형은 표현형이다. O형은 누구에게나 피를 줄 수 있지만 O형 피만 수혈할 수 있다는 식의 혈액형의 상관관계는 익히 알고 있는 지식이다. 아무 혈액이나 수혈 받지 못하는 이유는 원래 갖고 있던 혈액과 수혈한 혈액이 엉기기 때문이다.

혈액이 섞였을 때 엉기거나 엉기지 않는 것은 무엇이 결정할까? 먼저 혈액의 구성성분을 살펴보자. 혈액을 가만히 두면 혈구와 혈청으로 분리되는데, 혈구는 적혈구와 백혈구 같은 고체성분이고 혈청은 맑은 노란색 액체다. 혈구는 항원(응집원)으로, 혈청은 항체(응집소)로 작용해 둘이 맞으면 엉기는 것이다.

A형 혈액의 적혈구에는 A라는 항원이, B형 적혈구에는 B라는 항원이 있다. AB형 적혈구에는 A, B 항원이 모두 있으며, O형 적혈구에는 A, B 항원이 없다. 한편 A형 혈청에는 anti-B 응집소가 있어 B형 적혈구가 들어오면 엉긴다. B형 혈청에는 anti-A 응집소가 있어 A형 적혈구가 들어오면 엉긴다. O형 혈청에는 anti-A, anig-B 응집소가 모두 존재해서 A형 적혈구, B형 적혈구 모두 엉긴다. AB형 혈청에는 응집소가 없으니 엉기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A형 환자에게 O형 혈액을 수혈할 때, 넣어주는 O형 혈청이 A형 환자의 적혈구와 만나 엉기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맞다. 하지만 수혈하는 O형 혈청은 환자 몸속의 전체 혈액에 비하면 적은 양이기 때문에 혈액에 섞이면 희석되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큰 사고로 대량의 혈액이 필요할 때 가급적 같은 혈액형의 혈액을 수혈한다.

그렇다면 봄베이 O형이란 무엇일까? 봄베이 O형은 분명히 A형 또는 B형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적혈구에는 A형 또는 B형 ‘항원’이 없는 경우다. 그래서 어떤 응집소와도 엉기지 않는다. 따라서 유전자형은 A 또는 B형이지만 표현형은 O형이 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H, A, B 항원의 구조를 살펴보면 A, B 항원은 H 항원이 먼저 만들어진 뒤 A, B 항원이 붙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봄베이 O형은 어떤 이유에서 H항원이 만들어지지 않아 다음에 만들어져야 할 A항원이나 B항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A항원 또는 B항원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으니 자식에게 유전자는 그대로 전달되어 ‘중학교 지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O형 둘이 만나 A형, B형, AB형이 태어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문의자나 남편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둘 중 하나 이상이 봄베이 O형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봄베이 O형 외에도 여러 가지 희귀혈액형이 있다. 전체 인구의 0.4퍼센트를 차지하는 비교적 풍부한(?) Rh형은 ABO식 혈액형과는 별도로 Rh항원의 유무에 따라 구분하는 혈액형 판별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Rh항원이 있는 Rh+형이다. ABO와 별도로 구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Rh-형은 혈액형을 ‘A, Rh-’라는 식으로 표기한다.

cis-AB형은 A, B 항원을 만드는 유전자가 염색체 하나에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경우다. 예를 들어 AB형과 O형이 만나면 A형 혹은 B형이 나오지만, cis-AB형인 경우 AB형 혹은 O형으로 나온다. 이 외에도 -D-(바디바)혈액형, Duffy(a)-(더피 에이 음성) 혈액형, 밀텐버거 혈액형 등이 있다.

최근 Rh-형 혈액을 구한다는 방송자막이 드문 까닭은 Rh- 혈액형이 늘어서가 아니라 ‘Rh 음성봉사회’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필요한 혈액을 비교적 원활히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헌혈하는 사람이 적어 ‘희귀혈액형’보다 ‘일반적인 혈액’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람에게 수혈을 한 것은 1667년이지만, 혈액형은 1901년에야 규명되어 혈액형에 따른 수혈이 가능하게 됐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여러 종류의 혈액형이 있어서 수혈할 때마다 구별해야 하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조물주는 어떤 이유로 자연선택에 불리하게 작용할 이런 ‘불편’을 숨겨두었을까? (글 : 이정모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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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 평점   별 5점

과학 향기를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지식을 얻어가네요 고맙습니다~!^^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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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기
  • 평점   별 5점

중학교때 배운공부만으로도 알겠는걸요;
저도 서울님처럼 나이먹으면 까먹겠지만 아직 학생이다보니..혈액형 B형이라고해서 다같은 B형이아니구 BB형과 BO 형이 있게 되잖아요, O형은 열성이기때문에 우성인 B형으로 표기되지만 Bo형과 Bo형이 만났다면 O형이 나올 수 있는거 아닌가요, BB형과 Bo형이 만났다면 확률은 더 줄어들듯싶지만 역시 O형이 나올수 있을거라 생각되는데..

200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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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겟미낫
  • 평점   별 5점

cis-AB형은 A, B 항원을 만드는 유전자가 염색체 하나에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경우다. 예를 들어 AB형과 O형이 만나면 A형 혹은 B형이 나오지만, cis-AB형인 경우 AB형 혹은 O형으로 나온다.
저희 신랑이 이 경우네요~
몇 만분의 1 확률로 O형이 나온다고 하더니 그건 아니고 저 경우였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6^^

200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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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경
  • 평점   별 5점

오~ 저희 부모님은 모두 o형이신데, 저희 집 딸은 Ab형이라 늘 식구들이 모이면 이야기가 피바다가 되곤 했답니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o형을 받았다 하시고, 엄마도 회사에서 건강검진하면 늘 o형이라 하시는데 말이죠~ . 그런데 모두 딸들이 너무 닮아서 이게 뭔가~ 했는데. 이런게 있었군요~ 몇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아요~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200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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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훈
  • 평점   별 5점

위와 같은 경우는 아닙니다. B형의 유전자형은 흔히 2가지가 있는데 BB형과 BO형이죠.만약 두분께서 열성인 O형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BO형이라면 아이가 두 분에게 O형의 형질만 받아 O형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200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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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과학화
  • 평점   별 5점

잠시 고등학교 떄 배운 걸 떠올렸더니 유쾌하네요. 그림도 재미있고 잘 읽었습니다!

2006-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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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 평점   별 5점

아! 이해가 안돼!

20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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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울
  • 평점   별 5점

저랑 남편두 b형인데 우리 아가는 o형이예요 의사선생님이 그럴수도 있다고 해서 의심은 안하지만 솔직히 남편이 날 의심하는거 같아서 좀 그랬거든여 그럼 저두 위와 같은 경우일까요^^;

200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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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이다
  • 평점   별 5점

요세는 혈액형이 필요 없는것 같은데./...

200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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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 평점   별 5점

그렇다면 봄베이O형은 누구에게나 수혈이 가능한것이겠군요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20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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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봉
  • 평점   별 5점

봄베이 o 형을 접수 합니다...감사합니다...

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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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
  • 평점   별 5점

우와 신기신기!

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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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toce
  • 평점   별 4점

이해가 갈듯말듯-_-

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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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호
  • 평점   별 4점

오타가 있는것 같습니다 ;;;
생물 1책을 보니 혈액을 가만히 두면
혈장과 혈구로 나누어 진다고 하는데. 위에서는 혈청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혈청은 혈병과 나누어지는 종류로 원심분리를 통해서만 나누어 지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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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
  • 평점   별 5점

잘 읽었습니다.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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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
  • 평점   별 5점

항상 유익한 자료 감사합니다.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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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더리
  • 평점   별 5점

좋은 글이네요. 혈액형이 이렇게나 다양한데 이걸 네가지 단순구분하여 혈액형별 성격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짓인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네요.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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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 평점   별 5점

너무 좋은 글이네요~~
모르면 오해하기 쉬운 일이므로 널리 알리기 위해 퍼갑니다.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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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범
  • 평점   별 5점

너무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숨겨진 사실이 놀랍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 교육에 도움이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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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 평점   별 5점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과학컬럼에서 마지막에 조물주를 말씀하시는게 약간은 그렇네용.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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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비
  • 평점   별 5점

잘 읽었습니다^^ 생물에 관해 관심이 많은데 좋은 지식이 된것 같네요~
모르면 오해하기 쉬운 내용이니.... 퍼가겠습니다 ^^;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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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
  • 평점   별 5점

많은 것을 알고 갑니다^^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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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 평점   별 5점

정말 잘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의사공부를 하는 내 친구에게 해부할 때 신체 어느 부분이 가장 경이롭고 신기하냐고 물어봤더니, 단연코 "손"이라고 말하더군요.

위의 의견쓰신 분께 드리는 글)
근데, 과학기사에 조물주를 언급하는게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네요.
16,17세기 과학혁명의 근간이 된 정신이 바로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은 Divine Being에 의한 '자연법칙'에 따라 운동하고, 그 자연법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 라는 건데요.
과학과 조물주는 별개의 것이 아닌데요... 조물주가 있다 없다 자체가 과학이다 비과학이다를 규정하는게 아니라, 단지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 패러다임이라는 거죠.

그것이 각 개인의 관점/패러다임 문제라고 보면, 이 기사를 쓰신 분께서 자신의 관점/패러다임을 드러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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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웅
  • 평점   별 5점

상식에 상식을 더하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가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이면을 모르니까 그런 결과가 상식밖이라고 생각하는수가 많은데. 감사드리고 좋은 하루되세요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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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 평점   별 5점

예전에 기사로 해당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군요.
제 블로그에 담아가겠습니다.
(http://nosyu.egloos.com)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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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유
  • 평점   별 5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둘다 o형이라 아이 낳은 직후, 간호사가 아이 혈액형은 o형입니다, 라고 가르쳐 주었을 때 당연하죠, 라고 응답했더니 간호사 왈, 혹시 몰라서~ 잉? 농담도 잘하셔.이렇게 웃음을 주고받았는데
아닐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네요. 하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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