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 가평천 지리여행(Gapyeongcheon Geotravel)
<KISTI의 과학향기> 제2269호 2014년 11월 26일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하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과학향기에서 5월부터 새롭게 지리여행을 테마로 한 칼럼을 마련했습니다. [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은 평소 익숙한 곳이지만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꾸며 매월 마지막 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행을 제대로 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하죠.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과학향기에서 5월부터 새롭게 지리여행을 테마로 한 칼럼을 마련했습니다. [과학향이 나는 지리여행]은 평소 익숙한 곳이지만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꾸며 매월 마지막 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자~ 오늘은 하천여행이다. 서둘러 가평으로 가보자. 계곡을 보러 말이다. 단풍은 한물 지났지만 늦가을 정취는 아직 괜찮을 것이다. 모처럼 DSLR을 챙긴다. 무거워 한참을 외면했던 망원렌즈도 만져본다. 줄무늬 가득한 연회색 암반 위로 쏟아질 노란 햇살이 벌써부터 마음을 재촉한다. 날이 푹하면 잠깐이나마 계곡물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행선지는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 군청 기점으로 북으로 8km 거리에 위치한 가평천 상류 지점이다. 가평천은 화악산, 명지산, 연인산 등 1천m가 넘는 고봉들로부터 흘러나온 물줄기가 모여 만든 북한강 1차 지류. 북면 면사무소에서 좌회전해 75번 국도를 따라 5분 남짓 거슬러 달려가면 오늘의 지리여행지인 항아리계곡이 나온다. 이곳은 한 눈에 봐도 아이들과 함께 하면 딱 좋을 곳이다(사진 1).

사진 1. 가평천 항아리계곡. 해발 240m로 가평천 발원지로부터 11km 아래 지점에 위치한다. 호상편마암의 편리(片理)가 습곡을 받아 구불구불 휘어진게 신기하다.
항아리계곡. 말이 재밌다. 계곡이 항아리처럼 생겼단 얘기 같지만 그렇진 않다. 이곳에 ‘항아리’란 이름이 붙은 까닭은 이 가평천 바닥에 항아리들이 널려 있어서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항아리들이 보이질 않는다. 그 이유는 항아리들이 계곡 바닥 깊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항아리란 가평천 바닥에 파여진 돌개구멍, 즉 포트홀을 말한다(사진 2).

사진 2. 항아리계곡의 포트홀. 포트홀 속에 들어가 있는 자갈과 모래가 연마재 역할을 해 구멍의 깊이를 키우게 된다. 위아래 방향으로 절리가 깊게 지나가고 있다.
포트홀(pothole)은 ‘강바닥에 생긴 요지(凹地)’를 뜻하는 지형학 용어다.1 포트홀은 강바닥이 암반(岩盤)인 경우에 생긴다. 암반에 생긴 작은 틈에 모래와 자갈이 들어가 오랫동안 빙빙 돌면 항아리처럼 생긴 포트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포트홀을 만드는 침식작용을 마식(磨蝕, abrasion)이라 부른다. 맷돌이 도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 항아리계곡의 포트홀을 찬찬히 구경해 보자. 항아리계곡의 제원은 폭 30m, 길이 25m. 편마암 암반 위로 모두 140개가 넘는 포트홀들이 널려 있다(그림 1). 항아리처럼 생긴 것부터 재떨이같이 생긴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아주 다양하다. 얼마나 강물 힘이 세길래 암반에 저런 구멍들을 다 새겨놓은 것일까? 연회색 편마암을 길게 뚫고 들어온 하얀 석영맥(石英脈)에 시선이 쏠린다(사진 3). 마식을 받아 매끈하게 다듬어진 암반에 윤기가 흐른다.
![]() | ![]() |
그림 1. 항아리계곡의 포트홀 분포도. 그림 왼쪽이 상류, 오른쪽이 하류다. | 사진 3. 항아리계곡의 호상편마암 암반을 관입한 석영맥.두께가 15cm나 된다. |
항아리계곡의 포트홀은 이곳의 넓은 암반과 곡류의 합작품이다. 큰 비가 내리면 계곡 물은 삽시간에 불어난다(사진 4). 큰물은 그동안 계곡에 쌓였던 자갈과 돌가루를 들고 강바닥을 훑는다. 계곡을 사정없이 깎아내는 순간이다. 하천이 곡류하는 곳에선 침식력이 극도에 달한다. 하지만 비가 그친 후에도 계곡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가 계곡을 무심코 보기 때문이다.


사진 4. 항아리계곡의 강우 시 모습(오른쪽 사진). 강우 시에는 하천의 하각침식이 활발히 일어나 계곡 모양을 바꾸게 된다.
암반 위로 올라가 보자.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곳곳에 다양한 형태의 포트홀이 보인다. 포트홀들이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게 재미나다. 석영맥을 따라 늘어선 길쭉한 모양의 포트홀들이 눈에 들어온다(사진 5). 석영맥보다 침식에 견디는 힘이 약해 저런 구멍이 파였을 것이다. 바위도 약한 놈은 깎이고 강한 놈은 살아남는다.

사진 5. 석영맥 가운데에 형성된 포트홀들

사진 6. 항아리계곡의 횡단면 모습. 넓이 30m의 이 계곡 바닥은 편마암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 왼쪽이 우안(右岸), 오른쪽이 좌안(左岸)이다.
사진 6은 항아리계곡의 횡단면을 찍은 것이다. 암반 두께가 우안은 3m, 좌안은 1.5m 정도로 제법 두껍다. 그런데 이 횡단면을 자세히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이 계곡 양쪽 높이가 같음을 알 수 있다. 좌우 높이가 같은 맨 위의 Ⅰ면(面), 그 아래의 Ⅱ면, 또 그 아래의 Ⅲ면, 현재 물이 흐르고 있는 Ⅳ면 등 이곳에서 모두 4개의 대칭면들이 발견된다(사진 7).2

사진 7. 항아리계곡은 계곡 좌우의 높이가 같은 4개의 단구면으로 구성돼 있다.
높이가 같은 면은 과거 가평천이 흘렀던 하상(河床, 강바닥)을 의미한다. 맨 처음 Ⅰ면 위를 흘렀던 가평천이 강바닥을 깎아 Ⅱ면 위를 흐르게 됐고, 그 다음엔 Ⅲ면을, 그리고 지금은 Ⅳ면 위를 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면을 단구면이라고 한다. 단구(段丘, terrace)란 과거 하천이 만들어 놓은 계단 모양의 평탄 지형을 말한다. 이곳은 암석단구와 같은 경관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이 항아리계곡의 마식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투명한 물 밑 바닥 곳곳에서 큰 웅덩이들이 둥글게 깎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포트홀들은 지금도 왕성하게 규모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우안에서 관찰된 사람 키보다도 더 깊게 파인 포트홀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수백 년이 지나면 이 항아리계곡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수년 전 문화재청은 항아리계곡의 포트홀 밀집도에 주목해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기도 하였으나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진 않았었다. 왜냐하면 설악산과 지리산 등 깊은 계곡 곳곳에 선녀탕, 옥녀탕 등의 이름을 갖는 규모가 큰 포트홀이 산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가평천 항아리계곡은 포트홀의 밀집도가 높아 여전히 경관 보존가치가 높은 곳임엔 틀림없다.
하천 침식현상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이 항아리계곡은 아이들이 더 없이 좋아할 곳이다. 단, 이곳에서 조심해야 할 것 두 가지. 항아리계곡은 차들이 달리는 도로변에 위치한 관계로 차 세워둘 곳이 없어 위험하다. 도로에서 내려갈 수도 없다. 항아리계곡 옆에 새로 생긴 리조트나 계곡 아래의 항아리유원지를 이용하도록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물이 아주 차다는 것. 의외로 수심도 깊다. 어른들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이유다. 이것만 조심하면 항아리계곡은 가족끼리 탐구할 수 있는 즐거운 장소가 될 것이다.
<각주>
1. 최근의 언론 자료에는 해빙기 때 아스팔트 도로에 파인 구멍도 포트홀이라고 하는데 본디 포트홀이란 하천 마식작용으로 생긴 항아리 모양의 구멍을 말한다.
2. Ⅰ면, Ⅱ면과 같은 단구면 명칭은 맨 윗면을 기준으로 해 붙인다. 예를 들어 단구면이 3개일 경우엔 맨 위부터 순서대로 Ⅰ, Ⅱ, Ⅲ면으로 부르면 된다.
<인용 자료>
1. 전홍근, 박종관, 2011, 가평천 포트홀의 형태 및 분포에 관한 정량 연구, 한국지형학회지, 18-4, 213-221.
2. 박종관, 2009, 가평천 돌개구멍, 2009 지형·지질문화재 정밀조사 보고서, 45-73, 문화재청.
글 : 박종관,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http://jotra.com), 문화체육관광부 생태관광컨설팅위원장(MP)
사진, 그림: 박종관 교수 제공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
- [과학향기 Story] 차 한 잔에 중금속이 줄었다? 찻잎의 숨겨진 능력!
-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이에 커피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커피의 소비량은 ‘차(茶)’의 소비량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는 많은 국가에서 차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페인 외에도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어, 건강을 목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Story] 차 한 잔에 중금속이 줄었다? 찻잎의 숨겨진 능력!
- [과학향기 for Kids] 나무 뗏목 타고 8000km 항해? 태평양을 건넌 이구아나의 대모험
- [과학향기 Story] 우주를 102가지 색으로 그려낼 스피어엑스
- [과학향기 for Kids] 잘 모를 때 친구 따라 하는 이유!
- [과학향기 Story] 기후변화가 불러온 역대급 LA 산불… 한국도 위험하다?
- [과학향기 for Kids] 한 달 동안 똥을 참는 올챙이가 있다?
- [과학향기 for Kids] 74살에도 엄마가 된 새가 있다? 앨버트로스 ‘위즈덤’
- [과학향기 for Kids] 2025년, 푸른 뱀의 해…뱀은 어떤 동물일까?
- [과학향기 Story] AI 전문가, 인간과 함께 미래 유망기술을 꼽다
- [과학향기 for Kids] 거제에서 첫 발견된 스테고사우루스류 발자국!
아름답네요
2015-03-09
답글 0
소중한 코너입니다. 계속 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014-11-29
답글 0
감사합니다 가까운 곳에 그런 자연의 경이적인 경관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2014-11-26
답글 0
....잘 보고 갑니다
2014-11-26
답글 0
재미있음
2014-11-26
답글 0
한국 지리적 특성을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가평천에 대한 지리적 특성을 관심있게 다 읽었습니다 다음에도 차례데로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기고해 주세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4-11-26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