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역사속 위인들의 혈액형을 알수 없을까?

<KISTI의 과학향기> 제209호   2004년 11월 10일
최근 ‘B형 남자’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B형 남자의 성격은 이러저러하다’는 내용으로 노래 가사에도 등장하는가 하면, B형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까지도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혈액형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이 다르다는 얘기는 그다지 새삼스러운 논란이 아니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부터 이런 얘기를 숱하게 접해왔다. 정말 신통하게 들어맞는다며 나의 혈액형과 성격, 또는 기질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 잣대를 들이대서 판단을 하기도 한다. ‘그 사람 성격이 시원시원하던데 물어보니 역시 O형이더군’ 등등. 그런데 과연 사람의 성격은 정말 혈액형에 따라 틀린 걸까? 이 이론은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걸까?먼저 혈액형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밝혀진 것인지 간단히 알아보자. 서양에서는 17세기 이전부터 외과 수술이 행해졌지만 수술 도중의 출혈 때문에 환자가 쇼크 등으로 죽는 일이 허다했다. (물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도 2차 감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 문제는 수술 중에 위생 문제를 철저히 지키게 된 다음에야 해결되었다.) 그래서 닭이나 개와 같은 동물의 피를 수혈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별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수혈 자체가 한동안 금지되다가, 19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같은 인간의 피를 수혈하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동일 종’간의 수혈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환자들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 반면에 사망자도 많이 나왔다. 어찌된 일인지 혈액의 응고나 응집 현상이 수없이 일어났던 것이다. 결국 이 원인을 끈질기게 파고 든 결과 칼 란트스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가 1901년에 A, B, O라는 세 가지 혈액형이 존재함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그 뒤에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 AB형도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확인이 되었다. 이것은 모두 혈액의 응집 현상이 서로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기준에 따른 혈액형 구분이다.

그 뒤로 의학이 발달하면서 혈액형을 나누는 기준도 갈수록 세분화되었고, 그에 따라 혈액형도 훨씬 다양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날 현대 의학에서는 인간의 혈액을 대략 150여 가지로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Rh식 혈액형은 무려 45가지에 이르는데, 우리가 흔히 Rh+냐, Rh-냐 하는 것은 적혈구의 ‘C’, ‘D’, ‘E’ 항원 중에서 ‘D라는 항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나눈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혈액형별로 성격이 다르다’는 이론은 그 숱한 혈액형들 중에서 ABO식 혈액형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이론은 일본에서 1970년대에 노오미 마사히코라는 작가가 책으로 펴내면서 유명해진 것으로서, 그는 의학자는 아니었으며 동경대 공학부를 졸업한 뒤 줄곧 저널리즘계통에 종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1920년대에 독일에서 유학했던 후루카와라는 심리학자가 <혈액형에 따른 기질 연구>라는 책을 낸 기록이 있다. (당시의 독일은 인종에 따른 차별성을 정당화하는 우생학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1920년대만 해도 지금과 같이 복잡한 혈액형 분류체계가 밝혀지기 전이어서인지, 그의 책은 ABO식 혈액형만을 놓고 천성적인 기질을 논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모집단 수는 고작 319명에 지나지 않았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혈액형에 따른 인간 성격학’은 과학적으로 그리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 못 된다. 물론 이 이론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이론을 증명하려면 모든 생리적, 사회적 조건을 똑같이 한 상태에서 오로지 혈액형만을 다르게 놓은 실험 대상자들이 어떤 성격 특성을 보이는지 일정 기간에 걸쳐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결국 이 이론 자체도 논증 불가능의 방패 뒤에 숨어 있는 셈이다.

현재까지 혈액형에 따른 성격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그 어떤 과학적 논거도 충분한 통계적 유의미성을 가지고 제시된 바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지한 과학 연구의 대상으로 주목받은 일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것은 이 이론이 그만큼 모호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인간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워낙 복잡다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는 대개 선천적인 요인보다는 후천적인, 특히 성장기의 환경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고 알려져 있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 이론에 빠져들다 보면 마치 정해진 숙명론과 같은 자기암시에 걸리기 쉽다. ‘나는 원래 이러니까 고치려고 해 봐야 소용없어’나 ‘난 원래 이러니까 간섭하지 마’와 같은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해 버리는 것이다. 점성술이나 사주운명학 같은 것처럼 혈액형에 따른 성격 이론 역시 꼼꼼히 들여다보면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이런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잠재성들을 무시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어버리는 행위일 뿐이다. (글:박상준-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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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직
  • 평점   별 4점

혈액형이 다양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혈액형에 따른 성격이론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데 다시 읽으니 좀 더 명확해 지네요.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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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 평점   별 5점

혈액형이라고 해봐야, 고작, A,B,O,AB형으로만 구분되는줄 알았는데, 인간의 혈액을 대략 150여 가지로 나누고 있다니 놀랍네요. 혈액형에 따른 성격분류로 자신의 잠재성을 무시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둬 버리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200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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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사는사람
  • 평점   별 5점

진짜 좋ㄴ 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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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욱
  • 평점   별 5점

매우 좋은 글입니다.^^

20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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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남
  • 평점   별 2점

제목은 역사속 위인들의 혈액형은 알수 없을까? 인데,
내용은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

200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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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군
  • 평점   별 5점

의문남 바보.

암묵적으로 "알 수 없다." 라고 쓰여 있잖아.

200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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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 평점   별 5점

저와 저의 조카가 같은 혈액형 B형 입니다. 그런데 저와 저의 조카는 거의 모든것이 끝에서 끝이라고 할만큼 다릅니다.그리고 저의 형님은 O형 입니다. 그런데 저의 형과 저는 성격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러니 혈액형의 성격이라는 것 저역시 안 믿습니다.

200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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