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향기 Story
- 스토리
스토리
빙하 녹이는 ‘탄소 검댕’ 아세요?
<KISTI의 과학향기> 제1232호 2010년 10월 18일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하이디. 그녀는 오늘 할아버지와 목동 피터와 함께 소풍을 떠났다. “졸졸졸졸 흐르는 요롤 레히디요 레이디효 레히디히리~” 하이디가 부르는 흥겨운 요들송 박자에 맞춰 걷다 보니 어느덧 산 정상에 닿았다. 저 아래 작게 보이는 마을과 꼬불꼬불한 강줄기가 하이디의 눈에 들어왔다. 하이디는 자신이 정말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해졌다.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하이디나 피터와 달리 할아버지는 묵묵히 걷기만 한다. 조금만 올라가면 빙하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마디 던져준 게 고작이다. 할아버지는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이렇게 함께 소풍을 나서준 것만 해도 어딘가.
“하이디, 피터. 이제 다 올라왔구나. 저기 보이는 게 빙하란다.”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린 하이디와 피터는 깜짝 놀랐다. 하얗게 반짝이는 빙하가 있어야 할 자리에 회색의 거무튀튀한 바위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할아버지. 빙하가 어디에 있다고 그러세요? 저건 그냥 바위처럼 보이는데요?”
“네! 저기 보이는 건 회색이잖아요. 빙하는 원래 흰색 아니에요? 그리고 원래 빙하는 더 커다란 거 아니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좀 작은데…. 그냥 바위죠?”
아이들이 실망한 표정을 보였지만 할아버지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다. 마치 득도한 노인처럼 빙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던 그가 입을 떼고 말을 시작했다.
“나 어릴 땐 저것보다 크긴 했지. 산 중턱까지 빙하가 내려와 있었으니까 말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빙하가 있는 풍경이 참 멋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너희 말처럼 회색의 빙하만 남았구나. 빙하 위에 거무튀튀한 찌꺼기들이 날아와 앉은 탓이지.”
“거무튀튀한 찌꺼기요? 그게 뭔데요?”
하이디는 과묵한 할아버지가 말을 시작한 것이 반가웠다. 혹시라도 또 조용해질세라 질문을 재촉한다.
“주변에서 날아온 먼지와 나무, 석탄, 석유를 태울 때 나오는 오염물질들이지. 이런 찌꺼기(검댕, black carbon)가 빙하에 들러붙으면 열을 반사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게 된단다. 그러면 빙하가 빨리 녹게 되지. 여기 알프스뿐 아니라 그린란드와 히말라야 산맥에서도 이런 찌꺼기들이 빙하를 점점 줄어들게 한단다.”
“아~ 그럼 빙하가 시커먼 바위처럼 보이는 게 찌꺼기들이 쌓여서 그랬던 거군요. 빙하가 바위처럼 보일 정도니깐 이런 찌꺼기가 엄청 많이 날아오나 봐요. 주변에 공장도 없는 것 같은데. 다 어디서 온 거지?”
피터가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평소에 염소 말고는 관심도 없더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나 보다.
“해마다 바람에 날려온 소량의 찌꺼기들이 빙하 위에 쌓이고 그 위에 눈이 쌓이는 일들이 반복된단다. 여름이 되면 눈과 얼음은 녹아버리지만, 찌꺼기들은 녹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되지. 찌꺼기들로 이뤄진 층이 두꺼워지는 거야. 그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빙하에 회색 천을 씌운 것처럼 된 거란다. 그래서 너희들이 처음에 빙하를 보고 바위라고 생각한 거야.”
“그렇게 빙하 위에 자꾸 찌꺼기가 쌓이면 빙하가 더 빨리 녹겠네요. 듣자 하니 지구가 자꾸 더워진다고 하던데…. 앞으로는 알프스에서 빙하를 못 볼 수도 있어요?”
울상을 짓는 하이디. 그녀를 향해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조금 전의 초연한 표정으로 하이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빙하가 사라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지구는 과거 100만 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했었거든. 지구 환경이 변하면 우리 인간들은 좀 혼란스럽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잖니. 마치 이 할애비가 피터처럼 꼬마였다가 어른이 되고 늙은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빙하가 녹아버리는 건 싫어요. 염소 떼를 몰다 고개를 들었을 때 멀리 보이는 하얀 산봉우리가 얼마나 예쁜데요!”
“지금처럼 거무튀튀한 빙하 말고 하얗게 반짝이는 빙하가 되면 덜 녹을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할아버지가 좋은 말로 타일러도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하이디와 피터. 빙하가 녹지 않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나선다.
“음. 페루 안데스 산맥에선 빙하가 녹는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를 하긴 한다더구나.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서….”
“와! 정말요? 어떤 일인데요?”
“산 정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일이란다. 흰색은 빛과 열을 반사하니까 산을 흰색으로 칠하면 온도도 낮아지고 빙하도 더 천천히 녹게 할 수 있다는 원리지. 그러면 결국에는 사라져가는 빙하를 복원할 수도 있다는 거고. 세계은행은 이 생각에 20만 달러를 지원했고, 페루 남부 아야코초 지역에 안데스 산맥 3개 정상을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하이디는 신이 났다.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피터가 말을 가로챘다.
“산 정상을 흰색으로요?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근데 흰색 페인트로 산을 색칠하려면 힘이 많이 들겠죠?”
“엄밀하게 말하면 흰색으로 색칠을 하는 게 아니라 흰색의 석회수를 뿌리는 것이란다. 물론 이 방법이 지구 온난화의 완벽한 대책이 될 수는 없겠지. 이 할애비 생각엔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빙하가 녹는 걸 안타까워하는 것도 사실 우리 인간의 관점이니까 말이다.”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고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봤다. 하이디와 피터도 할아버지를 따라 산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과 초목을 쳐다본다. 할아버지가 ‘자연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풍경 속에 있었다. 하이디와 피터는 빙하가 모두 녹아버린 자연과도 친하게 지내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시 요들송을 불렀다. 이 모습을 지켜 본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하이디나 피터와 달리 할아버지는 묵묵히 걷기만 한다. 조금만 올라가면 빙하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마디 던져준 게 고작이다. 할아버지는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이렇게 함께 소풍을 나서준 것만 해도 어딘가.
“하이디, 피터. 이제 다 올라왔구나. 저기 보이는 게 빙하란다.”
할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눈을 돌린 하이디와 피터는 깜짝 놀랐다. 하얗게 반짝이는 빙하가 있어야 할 자리에 회색의 거무튀튀한 바위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할아버지. 빙하가 어디에 있다고 그러세요? 저건 그냥 바위처럼 보이는데요?”
“네! 저기 보이는 건 회색이잖아요. 빙하는 원래 흰색 아니에요? 그리고 원래 빙하는 더 커다란 거 아니에요? 생각했던 것보다 좀 작은데…. 그냥 바위죠?”
아이들이 실망한 표정을 보였지만 할아버지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다. 마치 득도한 노인처럼 빙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던 그가 입을 떼고 말을 시작했다.
“나 어릴 땐 저것보다 크긴 했지. 산 중턱까지 빙하가 내려와 있었으니까 말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빙하가 있는 풍경이 참 멋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너희 말처럼 회색의 빙하만 남았구나. 빙하 위에 거무튀튀한 찌꺼기들이 날아와 앉은 탓이지.”
“거무튀튀한 찌꺼기요? 그게 뭔데요?”
하이디는 과묵한 할아버지가 말을 시작한 것이 반가웠다. 혹시라도 또 조용해질세라 질문을 재촉한다.
“주변에서 날아온 먼지와 나무, 석탄, 석유를 태울 때 나오는 오염물질들이지. 이런 찌꺼기(검댕, black carbon)가 빙하에 들러붙으면 열을 반사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하게 된단다. 그러면 빙하가 빨리 녹게 되지. 여기 알프스뿐 아니라 그린란드와 히말라야 산맥에서도 이런 찌꺼기들이 빙하를 점점 줄어들게 한단다.”
“아~ 그럼 빙하가 시커먼 바위처럼 보이는 게 찌꺼기들이 쌓여서 그랬던 거군요. 빙하가 바위처럼 보일 정도니깐 이런 찌꺼기가 엄청 많이 날아오나 봐요. 주변에 공장도 없는 것 같은데. 다 어디서 온 거지?”
피터가 할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평소에 염소 말고는 관심도 없더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나 보다.
“해마다 바람에 날려온 소량의 찌꺼기들이 빙하 위에 쌓이고 그 위에 눈이 쌓이는 일들이 반복된단다. 여름이 되면 눈과 얼음은 녹아버리지만, 찌꺼기들은 녹지 않고 계속 쌓이게 되지. 찌꺼기들로 이뤄진 층이 두꺼워지는 거야. 그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빙하에 회색 천을 씌운 것처럼 된 거란다. 그래서 너희들이 처음에 빙하를 보고 바위라고 생각한 거야.”
“그렇게 빙하 위에 자꾸 찌꺼기가 쌓이면 빙하가 더 빨리 녹겠네요. 듣자 하니 지구가 자꾸 더워진다고 하던데…. 앞으로는 알프스에서 빙하를 못 볼 수도 있어요?”
울상을 짓는 하이디. 그녀를 향해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조금 전의 초연한 표정으로 하이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빙하가 사라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지구는 과거 100만 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했었거든. 지구 환경이 변하면 우리 인간들은 좀 혼란스럽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잖니. 마치 이 할애비가 피터처럼 꼬마였다가 어른이 되고 늙은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빙하가 녹아버리는 건 싫어요. 염소 떼를 몰다 고개를 들었을 때 멀리 보이는 하얀 산봉우리가 얼마나 예쁜데요!”
“지금처럼 거무튀튀한 빙하 말고 하얗게 반짝이는 빙하가 되면 덜 녹을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할아버지가 좋은 말로 타일러도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하이디와 피터. 빙하가 녹지 않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나선다.
“음. 페루 안데스 산맥에선 빙하가 녹는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를 하긴 한다더구나.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서….”
“와! 정말요? 어떤 일인데요?”
“산 정상을 흰색으로 칠하는 일이란다. 흰색은 빛과 열을 반사하니까 산을 흰색으로 칠하면 온도도 낮아지고 빙하도 더 천천히 녹게 할 수 있다는 원리지. 그러면 결국에는 사라져가는 빙하를 복원할 수도 있다는 거고. 세계은행은 이 생각에 20만 달러를 지원했고, 페루 남부 아야코초 지역에 안데스 산맥 3개 정상을 중심으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하이디는 신이 났다.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기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피터가 말을 가로챘다.
“산 정상을 흰색으로요?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근데 흰색 페인트로 산을 색칠하려면 힘이 많이 들겠죠?”
“엄밀하게 말하면 흰색으로 색칠을 하는 게 아니라 흰색의 석회수를 뿌리는 것이란다. 물론 이 방법이 지구 온난화의 완벽한 대책이 될 수는 없겠지. 이 할애비 생각엔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빙하가 녹는 걸 안타까워하는 것도 사실 우리 인간의 관점이니까 말이다.”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고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봤다. 하이디와 피터도 할아버지를 따라 산 아래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과 초목을 쳐다본다. 할아버지가 ‘자연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풍경 속에 있었다. 하이디와 피터는 빙하가 모두 녹아버린 자연과도 친하게 지내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시 요들송을 불렀다. 이 모습을 지켜 본 할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추천 콘텐츠
인기 스토리
-
- 저주파 자극기, 계속 써도 괜찮을까?
- 최근 목이나 어깨, 허리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저주파 자극기가 인기다. 물리치료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손쉽게 쓸 수 있도록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충전으로 반나절 넘게 작동한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SNS를 타고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을 퍼지면서 판매량도 늘고 있다. 저주파 자극기는 전기근육자극(Electrical Muscle Stimu...
-
- 우리 얼굴에 벌레가 산다? 모낭충의 비밀스러운 삶
-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피부에는 세균 같은 각종 미생물 외에도 작은 진드기가 살고 있다. 바로 모낭충이다. 모낭충은 인간의 피부에 살면서 번식하고, 세대를 이어 간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신생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모낭충이 산다. 인간의 피부에 사는 모낭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로 얼굴의 모낭에 사는...
-
- [과학향기 Story] 차 한 잔에 중금속이 줄었다? 찻잎의 숨겨진 능력!
-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이에 커피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커피의 소비량은 ‘차(茶)’의 소비량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는 많은 국가에서 차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페인 외에도 다양한 성분이 함유돼 있어, 건강을 목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
이 주제의 다른 글
- [과학향기 for Kids] 나무 뗏목 타고 8000km 항해? 태평양을 건넌 이구아나의 대모험
- [과학향기 Story] 기후변화가 불러온 역대급 LA 산불… 한국도 위험하다?
- [과학향기 for Kids] 한 달 동안 똥을 참는 올챙이가 있다?
- [과학향기 for Kids] 74살에도 엄마가 된 새가 있다? 앨버트로스 ‘위즈덤’
- [과학향기 for Kids] 2025년, 푸른 뱀의 해…뱀은 어떤 동물일까?
- [과학향기 for Kids] 다리로 걷고 ‘맛집’까지 찾는 물고기가 있다?
- [과학향기 for Kids] 가을에는 왜 나뭇잎이 알록달록 물들까?
- [과학향기 for Kids] 멸종된 매머드,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 [과학향기 for kids] 여름철,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오는 이유는?
- [과학향기 for Kids] 여름 불청객, ‘모기’에게 물리면 왜 가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