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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 바람길, 도시의 숨통을 틔운다
<KISTI의 과학향기> 제3317호 2019년 03월 13일즘처럼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바람이 모든 먼지를 휩쓸어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바람은 대기오염을 쓸어주는 것 이외에도 뜨거운 여름날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연 바람은 우리의 숨통을 틔워 준다. 그런데 이런 바람에도 길이 있다. 우리가 길을 잘 설계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을 끌어들이는 도시 설계
요즘에는 도시의 바람길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도시나 건물의 설계 단계부터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길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바람길을 뚫어 도시를 식히려면 먼저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 주변에 녹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도시와 녹지 사이의 경계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나 높은 건물을 짓지 말아야 한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막기 때문이다.
도시를 설계할 때는 지형과 풍향을 고려해 바람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위치나 지형, 계절에 따라 모두 다르고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어떤 풍향에 맞춰 설계할지 정해야 한다. 보통 1년 정도의 오랜 기간 동안 바람의 방향을 측정한 뒤 가장 많이 부는 방향을 ‘주풍’으로 보고 이에 맞춰 설계한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우 주풍이 서풍이다. 서쪽을 제외한 북, 동, 남쪽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서쪽에서 들어온 바람은 한강을 따라 서울 도심으로 들어온다. 그 뒤 중랑천과 같은 하천을 따라 서울의 북동부까지 신선한 공기를 나른다.
외부의 바람을 도시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이려면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낼 때 주풍을 최대한 덜 가로막도록 지어야 한다. 하천과 더불어 도시의 주요 바람길인 도로는 가급적 풍향과 평행하게 만드는 게 좋다. 도로는 폭이 넓을수록 바람이 먼 곳까지 잘 통한다. 반대로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하거나 도로 양 옆으로 높은 건물이 늘어서 있다면 오염물질이 넓게 퍼지기 어렵다.
정량적인 바람길 설계가 필요
그러나 도시 외부의 시원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바람이 도심의 대기오염물질을 싣고 도시 외곽의 주거 지역으로 흐른다면 주거 지역의 공기는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 한강을 따라 흐르다 중랑천 북쪽으로 올라온 공기가 서울 북동쪽의 산지에서 내려오는 찬바람과 만나면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바람길을 제대로 뚫으려면 그 지역의 공기가 어디로 얼마나 흐르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국지적인 규모에서 바람길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건물의 긴 쪽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 되게 건물을 짓는다면 바람이 막히는 정도도 줄어든다. 여러 동의 아파트 단지를 설계할 때도 바람이 들어와서 나가는 경로를 고려해야 한다.
이때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제창한 ‘필로티 구조’도 대안이 될 수 있는데, 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벽체가 없이 기둥만으로 만들어 지상에서 들어 올리는 건축양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의 길을 고려하기 보다는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주택 등에서 주차장을 만들 때 흔히 사용되고 있다.
도심 내에서 찬공기를 만들 수 있다면 바람길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녹지나 하천은 머금고 있던 물이 증발하면서 온도를 떨어뜨리는 냉각 효과가 탁월하다. 도시 안에 녹지와 물이 흐르는 곳을 많이 만들어 주면 산에서 찬바람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산에서 만들어진 찬 공기를 도심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 도시 안에 녹지로 길을 만들 수도 있다.
자연의 시원한 바람은 도시의 열섬 현상과 대기 오염을 완화시킨다. 무엇보다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 주는 한 줄기 바람은 도시에서 잊혀진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뻥 뚫린 바람길을 통해 들어온 맑고 시원한 공기가 도시와 자연을 이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글: 고호관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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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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